‘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2025-05-14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대통령 자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리 권력의지가 있어도 백성이라는 물 위에 올라타야 국정 결정권자 권위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8명 중 5명이 곤욕을 치른 우리 현실은 강물을 거슬렀던 배의 최후를 보여준다. 대통령 스스로가 ‘역사적 개인’임을 알아야 권력의 주체가 시민이란 걸 깨닫게 된다.

실제로, 대통령이 ‘역사적 개인’이길 기대하는 시도 많았다. 임보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처럼 부드럽고, 불의의 정상배들에겐 범보다 무서운 대통령”(‘우리들의 대통령’)을, 신동엽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는 석양 대통령”(‘산문시1’)을 시로 꿈꾸고 기다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 의회 연설에서 낭송한 시가 신동엽의 ‘산문시1’이다. 군부독재 시절 ‘국부’로 추앙받은 대통령의 억압·폭정에 분노한 시인도 있다.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자”(‘그 놈의 사진을 떼어’) 했던 김수영, “나는 왜 나를 친애까지 했던 그들을 사기꾼 반역자 그 따위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가”(‘대통령 하나’)라고 절규한 김남주가 대표적이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도시게릴라 운동단체 ‘투파마로스’ 활동으로 13년간 독방에 갇혔던 장기수, 게릴라 출신 최초의 하원의원이었던 무히카는 존경받는 좌파 지도자였다. 대통령 재임기엔 동성혼·임신중지권 합법화, 취약층 일자리 확대 정책으로 사회적 약자의 존엄성을 중요시했다. 그보단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궁을 노숙인들에게 내놓고, 몬테비데오 변두리 허름한 농가에서 출퇴근하고,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재산의 전부였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거리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을 받들어 모시는 풍조를 없애야 한다”고 했던 그의 생각과 삶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대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란 우두머리 전직 대통령을 파면한 시민들이 터준 물줄기다. 그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는 ‘역사적 개인’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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