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21대 대선이 진행 중이다. 이번 조기 대선은 12·3 불법계엄을 몸으로 막고, 광장에서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낸 시민들의 힘으로 성사됐다. 그러나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본격화됐지만 광장에서 외쳤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잊혀가고 있다. 대선은 민주주의의 꽃이고, 민주주의는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시민들의 참여로 지탱된다. 광장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던 전세사기 피해자, 10대 청소년,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성 소수자···이들도 대선의 주인공이다. 경향신문은 이런 시민들의 ‘다른 목소리’를 릴레이로 싣는다.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 — “성평등이나 차별금지법 등 광장의 요구들이 대선 공약에 하나도 담긴 것 같지 않습니다. 윤석열이 없어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징애여성공감 활동가 진은선씨는 14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진씨는 12·3 불법계엄 당시 상황에 대해 “청각장애나 시각장애가 있는 시민들은 그날 비상계엄이 발생한 지 몰랐고, 상황이 다 끝나고 알게 된 경우가 많다”며 “비상계엄을 통해 어떤 사람들이 사회에서 배제돼있는지 더 크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장애 여성인 그는 “저도 24시간 활동 지원이 필요한데 계엄 때문에 돌봄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가장 크게 왔다”며 소회를 전했다.
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시민을 가르는 전략으로 반장애, 반페미니즘, 반동성애 같은 혐오 정치를 이용해왔다”며 비상계엄을 “폭주하는 남성성 정치”의 말로라고 분석했다.
진씨와 함께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는 정주희씨도 “윤석열 정권의 혐오·차별 정치는 실제 정책에도 반영됐다”며 “장애인 시설을 강화하는 정책, 돌봄에 금융 자본을 투입해 사업화하려는 시도 등 권리가 아닌 이윤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계속 작동돼왔다”고 말했다. 장애 아동·청소년 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서울사회서비스원 폐지로 중증 장애인의 돌봄 연계가 어려워진 일들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정씨는 말했다.
진씨는 “그래서 (윤 전 대통령 파면 촉구 집회에서) 들고 나갈 피켓(손팻말)이 진짜 많았다”고 말했다. 진씨와 정씨는 집회 손팻말과 구호에서 윤 전 대통령 퇴진과 함께 장애인 탈시설, 성평등, 차별금지법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요구를 담았다. 또 구호만큼이나 중요한 건 존재를 직접 드러내는 일이었다. 진씨를 비롯한 장애인 여성들은 휠체어를 타고 광장에 나섰다.
“보통 행진은 사실 앞뒤로 열을 맞춰서 하잖아요. 저희는 휠체어를 타고 양옆으로 행을 맞춰 행진한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누구는 입으로 운전하고 손목으로 운전하기도 하니까 처음엔 각자 속도를 맞추는 게 좀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거의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될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쯤엔 호흡이 착착 잘 맞더라고요.”

장애인, 여성, 성 소수자 등 다양한 목소리가 모인 광장이었다. 광장의 열기를 기억하는 만큼 진씨는 지금의 주요 대선 후보의 공약에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그는 “성평등이나 차별금지법 등 광장의 요구들이 하나도 담긴 것 같지 않다”며 “국민의힘은 극우 세력과 절연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먹사니즘 얘기만 봐도 어떤 것을 더 미룰 건지가 너무 명확해 보인다”고 말했다.
진씨와 정씨는 요즘 ‘윤석열 이후’ 세상을 고민한다. “광장의 의미는 계엄에 반대해서 나온 시민들의 삶을 연결하는 시도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거기를 다니면서 만났던 복잡다단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누가 정권을 취득하고 누가 갖지 않는가로 귀결될 수 없는 문제예요. 누군가가 없어지는 거로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죠.” 정씨가 말했다.
진씨는 “윤석열이 없어도 사실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광장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권이 그걸 잘 이어가려면 (반계엄뿐 아니라) 일상에 맞닿는 변화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두 사람은 장애인이자 여성이 겪는 복합차별 해소를 위해 대선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장애인 돌봄 책임을 가족이나 시설로 떠넘기는 구조를 중단하기 위한 ‘탈시설’도 장애여성공감이 꾸준히 주장해 온 가치다. 12·3 불법계엄 당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외딴 섬에 놓여있는 약자 중 약자였다”고 진씨는 말했다. 정씨는 “어느 누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시설에 보내고 싶어하겠냐”며 “그러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시설이 아니라 나와서 살 수 있는 곳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라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