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선택, 그리고 10년의 세월
새천년을 앞둔 2000년 무렵, 서로가 힘들던 시기에 만난 박선우씨(가명)와 이지아씨(가명)는 결혼은 하지 못한 채 아들 민준이(가명)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박선우씨는 사실 본처가 있던 상황이었고, 이지아씨는 이를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이지아씨는 홀로 민준이를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박선우씨는 이지아씨에게 “내 자식이니까, 민준이에 대한 양육비로 앞으로 5년간 1억 원을 나누어서 지급하고 추가로 양육비도 5년간 월 100만 원씩 지급할 테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양육비 포기 각서’를 받고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박선우씨는 자신이 약속한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이지아씨는 박선우씨를 상대로 각서에 따른 합의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조정 과정에서, 민준이에 대한 친권행사자 및 양육자를 이지아씨로 하고, 박선우씨에게 더 이상 양육비 등 양육의 부담을 일체 주지 않기로 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되었습니다.
아이가 성년이 된 뒤 날아온 ‘양육비 청구서’
18년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이지아씨와 아들 민준이는 박선우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제기한 주체는 이지아씨가 아닌, 아들 ‘민준’이의 이름이었습니다.
소장의 내용은 “친아버지임을 인정(인지)하고, 민준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과거 양육비 전액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에서 박선우씨는 18년 전 이지아씨에게 받은 ‘양육비 포기 각서’를 증거로 제출하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쟁점은 바로 이것! 부모의 합의 vs 자녀의 권리
박선우씨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분명히 아이 엄마인 이지아씨가 ‘양육비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습니다. 부모 당사자 간의 합의는 유효한 것 아닙니까? 이제 와서 아이를 원고로 내세워 과거 양육비까지 달라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부당한 요구입니다.”
민준이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어머니(이지아씨)가 포기한 것은 ‘어머니의 권리’일 뿐입니다. 저(민준이)의 권리까지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양육비를 받을 권리는 부모가 아니라 자녀 본인에게 있는 고유한 권리입니다. 부모가 마음대로 자녀의 권리를 처분할 수 없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대법원은 민준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우선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기 전이거나, 확정된 이후라도 그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이라면, 장래 양육비채권을 포기하기로 하는 약정을 하였더라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복리에 반하여 그 포기의 효력이 자녀에게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25. 9. 11. 선고 2023므11758 판결).
즉, 부모 사이에 장래 양육비채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하였더라도, 그것만으로 자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부양료 청구권, 즉 자녀 고유의 권리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한편, “부모의 법률상 부양의무는 인지판결이 확정되면 그 자의 출생 시로 소급하여 효력이 생기는 것이므로, 양육자는 인지판결의 확정 전에 발생한 과거의 양육비에 대하여도 상대방이 부담함이 상당한 범위 내에서 그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생모와 생부 사이의 양육비 포기 합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혼외자인 자녀 본인이 인지 및 과거 양육비를 청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박상홍 변호사 한 줄 정리!
부모가 서로 양육비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더라도, 이는 자녀에게 효력이 없으며, 자녀는 부모를 상대로 여전히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박상홍 변호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대한변호사협회 형사법·가사법 전문 등록 변호사 ▲現 법무법인(유) 로고스 변호사·변리사 ▲ <2024 북한인권백서>, <금융피해 법률지원 매뉴얼>, <가정법원 너머의 이혼상속 상담일지> 등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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