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딸들, 세상에 균열을 내다

2025-05-08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최나현·양소영·김세희 지음

오월의봄 | 312쪽 | 2만1000원

12·3 불법계엄의 밤 이후, 광장에는 ‘응원봉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위 현장을 중계하는 카메라에 2030 여성들의 모습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담겼고,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그 현상을 앞다퉈 다뤘다. 페미니스트이자 ‘2030 여성’인 저자들은 “이야기가 넘쳐났지만, 정작 여성들의 얼굴이 또렷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세 사람은 광장에서 발언하거나 시위에 참여한 시민을 직접 인터뷰하기로 했다.

책에는 고졸 생산직 노동자, 한화오션 투쟁에 연대하게 된 한화이글스 팬,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고등학생, 자유발언으로 화제를 모은 “술집 여자”,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 등의 원석 같은 속마음이 실렸다. 더 많은 이들을 만났으나, 그중 13명의 이야기를 골라 구술채록 형태로 담았다. 광장조차도 서울 중심으로 얘기된다는 것을 알기에 비수도권 출신을 위주로 선정했다.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기소개가 의외로 잦다. 집회는 낯설고 노동조합은 괜히 무서웠다던 이들이 많다. 이 평범한 개인들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거리에 나섰다. 특별히 영웅적이라기보단, 알 것 같은 마음들이라 더 애착이 간다.

광장이 이들에게 준 것은 연대감이다. 인터뷰이들은 나이, 직업, 성적지향 등 어떤 정체성을 지녔든 환대받는 경험을 했다고 증언한다. 긍정적인 연대의 경험은 농민들의 남태령으로, 장애인들의 지하철역으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으로 이어졌다.

“TK(대구·경북)의 콘크리트는 TK의 딸이 부순다”는 손팻말로 화제가 된 김소결씨는 말한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이 땅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로 취급받던 ‘딸’이 이제는 균열을 내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고. 그의 말은 ‘광장에 선 딸들의 이야기’라는 책의 부제에 힘을 더한다. 지워지지 않을 딸들의 외침이 은하수처럼 수놓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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