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각자 성을 쓰는 것에 이토록 민감한 나라

2025-05-08

우타다 히카루는 1998년 데뷔 이후 줄곧 팬들에게 사랑받던 일본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대표곡인 ‘First Love’는 한국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곡이다. 그녀가 지난 2일 공개한 신곡 ‘Mine or Yours’가 일본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레이와(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한 2019년부터의 연호) 몇 년쯤이면 이 나라에도 부부별성이 받아들여질까’라는 한 소절의 가사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가사 내용 가운데 부부별성제가 튀어나오니, 반감을 가진 이들이 우타다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가 X(옛 트위터)에 공개한 노래 링크에는 “실망했다”, “다시는 당신의 노래를 듣지 않겠다” 등의 날 선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부부별성제는 일본에선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일본은 ‘부부동성제’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이다. 결혼하면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쪽은 성을 바꿔야 한다. 대부분 여성이 남편 성을 따른다. 신분증이나 여권, 신용카드 등을 모두 바꿔야만 한다. 일본의 느린 행정과 금융 시스템을 떠올려보면 끔찍할 정도이다. 이혼이나 재혼 등 혼인 관계에 변화가 생길 때면 성이 바뀌니 감출 수도 없다.

일본의 진보계를 중심으론 동성제가 아닌 별성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실제로 여론 조사를 해보면 찬성하는 측은 60%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가족이란 동질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동일한 성을 쓴다는 상징성이 그만큼 일본에선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부별성제는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는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해 부부별성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보수적인 자민당 지지층에게 외면받았다. 선거 당시만 해도 “취지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이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부부별성제에 대한 당내 부정적 세력에 눈치를 봐야만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에서 주도권을 쥐고 추진하고 있지만, 중의원 법무위를 통과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부별성제를 자꾸만 추진하다간 ‘입헌공산당’이란 비판에 휩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한다.

이대로 일본의 부부별성제 도입은 식어버리고 말 것인가. 우타다의 가사에는 이러한 대목도 있었다. ‘식어버리면 다시 데우면 돼. 불안 요소도 양념하기 나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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