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좌파 명문대’ 때린 트럼프…지지층은 결집해도 인재는 탈출

2025-09-14

대학은 지식 추구가 아닌 좌파 세계관을 밀어붙이는 곳이다.

지난 10일 미국 유타주(州) 유타벨리대에서 총격을 받고 숨진 ‘청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찰리 커크가 5월 폭스뉴스에 한 말이다. 그는 2012년 비영리단체 ‘터닝포인트 USA’를 설립해 850개의 미 대학에 지부를 두고 좌파 성향 교수와 학생 등과 ‘문화전쟁’을 벌였다.

커크는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라(Prove me wrong)’란 즉문즉답 토론 중 총을 맞았는데, 오는 25일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에서 진보 인플루언서 하산 파이커와 토론 배틀을 하는 등 미 대학 10여 곳에서 같은 행사를 벌일 계획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학은 마르크스주의 광신자에 지배되고 있다” 며 대학 압박에 나선 건 커크 같은 마가 전도사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다. 트럼프가 “위대한 전설이 죽었다. (커크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다”며 조기 게양을 명령하는 등 그의 죽음을 애도한 이유다.

반유대주의 근절 명분으로 개혁 요구

트럼프의 ‘대학 뜯어고치기’ 프로젝트는 2월 ‘반(反)유대주의 근절 태스크포스’를 만들며 시작됐다. 2023년 10월 가지지구 전쟁 시작 후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캠퍼스 시위에 소극적인 대응을 한 대학을 문책한다는 명분이었다. 하버드대·컬럼비아대·존스홉킨스대 등 10곳을 지목해 조사를 벌였지만 끝이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부터 이들 대학에 브라운대·코넬대·프린스턴대·버지니아대 등을 더한 명문대 전체로 범위를 넓혀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폐지 ▶교수 채용·학생 입학 관련 정보 제출 ▶외국인 유학생 입학 요건 강화 등이 골자다. 대학의 성소수자·소수인종·외국인 우대 경향을 뜯어고치겠다는 의도였다.

정부 ‘돈줄 죄기’…대학 ‘항복 선언’

압박 수단은 돈이다. 하버드대에 22억 달러(약 3조1000억원) 규모의 연방정부 보조금 지급을 동결한 것을 필두로 주요 대학의 정부 지원 자금을 보류·삭감했다. 연간 운영수익에서 정부 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15~50%나 되는 미 대학의 재정적 약점을 노렸다.

‘돈줄 죄기’ 효과는 컸다. 브라운대와 컬럼비아대는 인종·성별·시험 점수 등 입학 자료를 정부에 제공하고 각각 10년간 5000만 달러(약 692억원), 3년간 2억 달러(약 2700억원)의 돈도 정부에 내기로 했다. 펜실베이니아대는 재학 중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해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수영대회에서 우승한 트랜스젠더 수영선수 리아 토머스의 기록을 7월 삭제하고, 경기에서 불이익을 받은 여성 선수에게 사과하기로 했다. 버지니아대와 노스웨스턴대에선 재정 압박을 못 이기고 총장이 사임했다.

정부 조치에 소송을 제기한 하버드대만 지난 3일 연방 법원에서 “지원금 동결·중단 조치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백악관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보수 엘리트·저소득 백인 결집 노려

트럼프는 왜 ‘대학 때리기’에 열을 올릴까. 지지층 결집의 불쏘시개로 유용하다고 여겨서다. 대학이 좌경화돼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 엘리트층과 명문대가 ‘그들만의 리그’라고 여기는 저소득 백인 노동자층의 불만을 아우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보수주의자는 명문대를 ‘워크(Woke·진보 가치 추구 운동)’ 이념 세뇌의 온상이라고 여긴다”고 전했다. 이들은 1990년대 정치적 올바름(PC), 2000년대 ‘월가 점령’, 2020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 2024년 반이스라엘 시위 등이 모두 대학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저소득층에선 천문학적인 학비가 드는 대학에 대한 반엘리트 정서가 높아지고 있다. 퓨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미 대학이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2012년 26%에서 지난해 45%로 급증했다. 로널드 대니얼스 존스홉킨스대 총장은 “트럼프는 고등교육에 비판적 정서를 지닌 유권자들의 분노와 불안을 활용하는 천재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텃밭 흔들기 시각도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노린 행보란 시각도 있다. 트럼프가 때린 아이비리그(뉴욕·뉴저지·코네티컷 등), UC버클리·UCLA(캘리포니아), 노스웨스턴대(일리노이) 등은 민주당의 텃밭이다. 여론 주도층인 대학을 압박해 선거 구도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도란 얘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행정부는 플로리다·앨라배마·오하이오 등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 공립대들에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조금 동결을 압박했다”며 “트럼프는 자신이 정치적 성공을 거둔 지역의 학교를 괴롭히려는 의향이 없어 보인다” 고 평가했다.

트럼프 반발한 재미 학자 중국·유럽행

하지만 트럼프의 대학 때리기가 우수 인재의 탈(脫)미국을 촉발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인재 영입의 기회”(호주 전략연구소)란 평가 속에 주요국은 미국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는 지난 3월 티머시 스나이더 등 권위주의·파시즘을 연구하는 예일대 교수 3명을 영입했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는 트럼프 행정부에 반발하는 미 연구자들을 위한 15개 자리를 제안했다.

가장 큰 수혜국은 중국이다. 재미 중국인 과학자의 귀국이 잇따르고 있다. 데이터 과학·인공지능(AI) 권위자인 류쥔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칭화대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간암과 면역력 분야 석학인 펑건성 UC샌디에이고 명예교수도 같은 달 선전시의 한 암 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6월엔 대형 항공기 관련 핵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학자 저우밍이 미국 기업 알테어를 떠나 닝보동방이공대 석좌교수에 취임했다. 줄리 헝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미국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미국서 훈련받은 국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인재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