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식을 먹기 위해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시대, 세계 미식의 중심으로 꼽히는 뉴욕에서 한식이 가장 트렌디한 음식으로 여겨지는 요즘 최정윤씨는 미식계에서 가장 바쁜 인사 중 하나다. 국내외 미식계를 잇는 가교이자 인맥의 허브로 통하는 그는 셰프이자 한식연구가, 한식의 미래를 준비하는 커뮤니티 ‘난로회’ 대표, 그리고 미쉐린과 함께 글로벌 미식 평가 지표로 꼽히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한국 의장을 맡고 있다. 스페인의 ‘엘 불리’ 등 해외 유수의 레스토랑을 거쳐 정식당 헤드셰프를 지냈던 그는 14년 전 이 가이드 평가자(voter)로 선정돼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땐 한국인 평가자도 거의 없었고 세계 무대에서 거론되는 한국 레스토랑이나 한국 음식도 없을 때였어요. 지금 세계 미식계에서 한식이나 한국 셰프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 세계 미식계에서 한국 음식의 위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셈이네요.
“아마 2010년대 초반이었을 거예요. 정부 주도로 한식 세계화 작업을 진행 중이었고 미쉐린 가이드 한국편 발간을 위해 애썼지만 당시 평가단이 방문했다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돌아갔어요. 그즈음 한국에 ‘파인 다이닝’이라는 개념은 특급 호텔의 몇몇 레스토랑밖에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뉴욕의 한식 레스토랑이 미쉐린 스타를 받고 한국 셰프가 미국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제임스비어드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고 있어요.”
-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지역 구분을 보니 지난해까지는 한국과 중국이 함께 묶여 있었다가 올해는 한국이 단독으로 분리되었어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글로벌 미식 시장에서 한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이드는 세계를 27개 지역으로 나누어 베스트 레스토랑을 선정하고 있어요. 한 나라가 한 지역을 차지하는 사례는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시아에서는 일본 정도밖에 없었죠. 이런 성과 때문에 세계 파인 다이닝계에서 최근 몇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곳이 한국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어요.”
2023년 그를 중심으로 발족한 ‘난로회’는 국내 외식업계에서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아토믹스, 온지음, 금돼지식당 등 이름난 레스토랑 오너와 셰프, 전통주,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50여명이 한식의 발전과 미래를 고민해보자며 모인 비영리 단체다. 18세기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던 모임 ‘난로회’에서 이름을 빌렸다. 2년 만에 회원 수는 600여명으로 늘었다.
- 독특한 식문화 커뮤니티인데,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최근 몇년 새 한식의 르네상스가 시작됐어요. 우리가 오랫동안 즐겨온 음식과 먹는 방식들을 외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따라 하고 싶어하거든요. 이런 시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지만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식이 50년, 100년 후에도 계속 주류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어요. 함께 모여 먹고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식의 경쟁력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하기로 한 거죠. 예를 들면 조상들이 쇠로 만든 전골냄비에 끓여 먹었던 전립투골을 현대적으로 만들어 본다거나 하는 식의 연구 주제를 놓고 아이디어를 내보는 거예요. 전의 여왕이라 불리는 김매순 선생님, 발효 전문가 김명성 선생님 등 각 지역의 명인들을 찾아서 배우는 프로그램도 ‘난로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요. 전통의 근원을 알아야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거든요.”
- 올해부터 난로회에서 ‘난로 넥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본격화한다고 했네요.
“난로회가 그동안 해온 고민의 결과물로 나온 프로젝트예요. 즉 앞으로도 한식이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2의 안성재, 강민구, 박정현이 나오려면 우리가 무엇을 지원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죠. 결국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멘토링과 교육이 필요하더라고요. 식당을 창업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요리 실력도 기본이지만 마케팅, 경영 등 현실도 제대로 알아야 해요. 난로회에 참여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그런 부분을 도울 거예요. 반드시 셰프일 필요는 없어요. 서비스 쪽의 매니저를 꿈꾸는 사람도, 전통주 소믈리에가 되고 싶은 사람들도 대상이 됩니다. 올 10월부터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될 예정이에요.”
난로 넥스트의 궁극적 목표는 한식학교 설립이다. 이곳에서 한식과 한식 레스토랑 창업 시스템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하려면 현지에 가서 배우잖아요. 한국에도 그런 학교가 있다면 지식과 사람이 모이고 한식이 세계 곳곳에 체계적으로 전파될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많은 외국인들이 배우러 오고 레스토랑이 만들어진다면 그들의 일상 속으로 한식이 더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