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 뿐인 안경 만든다…하버드 교재에도 실린 회사 [비크닉]

2025-08-23

‘안경에 사람을 맞춘다’라는 관습은 13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처음 안경이 등장한 뒤 최근까지 700여년간 이어졌습니다. 안경다리·코받침이 등장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는 등 안경 산업에도 혁신이 이어지긴 했지만, 소비자는 늘 안경에 얼굴을 맞추라는 선택을 강요받았죠.

이런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있는 한국 브랜드가 있습니다. 3D 스캐닝, AI 스타일 추천, 가상 시착을 활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형 안경을 만드는 ‘브리즘’입니다. 2018년 서울 역삼동에 1호점을 연 뒤 누적 매출 300억 원, 올해 상반기에만 60억 원의 매출을 올린 브리즘은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안경 시장에선 여전히 작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2022 CES 혁신상, 독일 레드닷·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기술력과 디자인을 인정받았고, 오는 9월부터는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혁신 사례로 소개될 예정이죠.

한국의 작은 안경 스타트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이처럼 큰 관심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7일 브리즘을 운영하는 박형진(50) 콥틱 공동대표를 만났습니다. 박 대표는 2006년 ‘안경도 패션이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알로(ALO)’라는 브랜드로 15개 매장, 연 100억 매출을 달성한 경험을 가진 안경 시장 연쇄 창업가입니다. 비크닉은 그가 안경 산업에서 포착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를 풀어가고 있는지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9월 하버드서 다룬다…안경 공급망을 뒤집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브리즘을 혁신 사례로 다룬다고 들었습니다.

9월 열리는 가을학기 수업부터 브리즘 사례가 교재에 포함됩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후안 알카세르 석좌교수 연구팀이 브리즘 한국 매장과 공장을 둘러보며 브리즘 사례를 탐색했어요. 알카세르 교수는 수백 년간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지던 안경 산업의 구조를 브리즘이 맞춤형 안경을 통해 ‘소비자 중심’으로 재정의한 점, 3D·AI 등 기술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만든 점에 주목했습니다. 저도 강의에 참여해 학생들과 토론할 예정인데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기존 안경 산업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우리나라 안경점에선 안경사의 추천에 따라 적당히 맞는 안경을 구매하는 구조다 보니 정밀한 시력 교정에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 소비자가 몰리는 시간에는 충분한 상담을 받기도 어렵죠. 공급자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큽니다. 국내 안경 유통은 보통 중국 공장에서 1년 치 물량을 선주문하고, 7~8개월 후에 받는 구조입니다. 미래를 예측해 주문하다 보니 독창적인 디자인 도전은 불가능해요. 팔리지 않으면 악성 재고가 되니까요. 또, 일반적으로 안경 매장은 비싼 상권에 몰려 있어 마케팅과 임대료 비용도 과도하게 들어요.

1시간에 1명만 응대…유럽 시장가 절반으로 줄여

브리즘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나요.

먼저 소비자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보려 했습니다. 브리즘은 예약제로 운영해 1시간에 단 한 명에게만 집중합니다. 3D 스캐닝으로 얼굴에 1221개 좌표를 찍어 얼굴 형태를 분석하고, 시력 검사와 진단 과정을 바탕으로 안경을 설계해요. 80여 개 디자인, 12가지 사이즈, 10가지 색상에 안경다리·코받침 소재와 모양까지 조합하면 수십만 가지 경우의 수가 나와요. 내 얼굴에 딱 맞는 안경을 만들 수 있는 이유죠. 공급자 입장에서도 좋아요. 예약제로 운영하다 보니 비싼 상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 상권이 없거나 지하에 매장을 낼 수 있죠.

맞춤형이라 가격이 훨씬 비쌀 것 같아요.

브리즘 안경 가격은 보통 20만~30만 원대입니다. 물론 일반 안경보다는 가격대가 있죠. 그런데 맞춤 안경 시장 안에서만 본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맞춤형 안경은 70만~80만 원 정도는 줘야 살 수 있거든요. 브리즘은 주문 제작을 통해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제작·유통 과정을 없애고 비용을 줄였어요.

문과생이 차린 기술 기업…“기술은 수단, 문제 진단이 먼저”

3D 스캐닝 기술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엔 자로 직접을 얼굴을 재다 한계를 느꼈습니다. 3D 스캔이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시엔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쓰던 기술이었죠. 그러다가 2017년 아이폰 10이 등장했는데, 여기에 페이스 아이디 기능이 추가된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브리즘에서 사용하는 1221개 얼굴 좌표 기능이 바로 애플의 기술이에요. 애플이 기술을 오픈 소스로 공개한 덕분에 브리즘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됐죠.

다른 최첨단 기술도 접목했는데요.

대량생산이 아닌 개인 맞춤 제작이라 3D 프린팅도 도입했어요. 필요한 만큼의 재료만 쓰기 때문에 기존 안경 시장 대비 폐기물을 80~90% 줄일 수 있죠. AI와 머신러닝 기술은 안경 스타일 추천에 활용해요. 약 8만4000개의 소비자 데이터가 쌓여있다 보니 얼굴 형태별 선호 디자인을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할 수 있어요. 가상 시착으로 실제 안경을 써본 듯한 경험도 할 수 있고요.

문과생 공동창업으로 안경 기술을 만든 건데요.

저는 P&G 코리아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공동창업자 성우석 대표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했어요. 전형적인 문과생들이죠. 과거엔 기술 기반 사업을 하려면 공대 박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오픈소스와 상용 솔루션이 많아요. 기술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일 뿐, 중요한 건 문제를 정의하고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미국 잡으면 글로벌 잡는다…스마트 안경 시장도 눈독

창업 초기부터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미국은 안경이 의료기기로 분류돼 전문의 처방 후 구매하는 구조라 가격이 비싸고, 시장 규모도 한국의 20~30배에 달해요. 다인종 사회라 얼굴 구조도 다양하죠. 가장 다양한 나라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글로벌 진출은 그리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곳곳에서 1년 반 동안 팝업스토어를 열어 미국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지난해 3월 뉴욕 1호점을 열었죠.

스마트 안경 시대에 브리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10년 내 스마트 안경이 일상화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무겁고 불편하면 오랜 시간 착용이 어려워요. 앞으론 착용감이 중요한 시대가 될 거예요. 얼굴 측정을 통해 최적의 코받침을 설계한 ‘스마트 안경을 위한 스마트 핏 솔루션’을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내년도 CES에도 출품할 계획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다음 달 서울 성수동에 3D 프린팅으로 안경 공장과 쇼룸을 엽니다. 오는 11월에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앱을 출시해 매장 방문 없이 얼굴 측정, 안경 처방전 업로드, 제작 및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장기적으로는 근시 아동부터 노안을 가진 노인까지, 누구나 ‘보는 것’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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