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 US오픈이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국립테니스센터에서 개막했다.
올해 US오픈 총상금은 지난해보다 20% 인상된 9천만달러(약 1천244억6천만원), 남녀 단식 우승 상금은 각각 500만달러(약 69억원)로 역대 최대 규모다.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해도 11만달러(약 1억5천만원)를 거머쥘 수 있다.
세계 1위 야닉 신네르(이탈리아)와 세계 2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가운데 38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7위)의 우승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호주오픈 10차례, 롤랑가로스 3차례, 윔블던 7차례, US오픈 4차례 우승하며 은퇴한 여자 선수 마가렛 코트(호주)와 함께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조코비치는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남자 선수로는 안드레 애거시(미국)와 라파엘 나달(스페인)에 이어 세 번째로 커리어 골든슬램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올 시즌 성적은 기대 이하다. 올해 출전한 세 차례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ATP투어 중 그랜드슬램 다음으로 등급이 높은 1000시리즈 대회에서는 단 한 개의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ATP투어 중 등급이 낮은 250시리즈 제네바오픈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조코비치의 커리어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US오픈에서의 전망 역시 밝지 않다. 7번시드를 받은 조코비치는 8강에서 지난해 준우승자이자 홈코트 테일러 프리츠(미국, 4위)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10전승으로 조코비치가 우위에 있지만 지난해 후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프리츠의 상승세가 만만치 않다. 4강에서는 올 시즌 롤랑가로스 정상에 오른 알카라스, 결승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올 시즌 호주오픈과 윔블던 우승자 신네르를 상대할 수 있다.
조코비치는 올 시즌 세 차례 열린 그랜드슬램에서 모두 4강에 오르는 등 여전히 수준 높은 기량을 보이고 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제 조코비치는 현실적으로 신네르와 알카라스처럼 젊고 폼이 좋은 선수들에 비해 ‘우승 후보 0순위’에서 ‘다크호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조코비치는 높은 첫 서브 성공률과 뛰어난 서브 플레이스먼트 능력으로 떨어진 서브 속도를 보완하고 있지만 서브 에이스 생산 능력은 전성기 때보다 확실히 떨어졌다. 또한, ‘리턴의 귀재’로 불릴 정도로 그의 서비스 리턴은 역대 최고의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반응 속도와 움직임이 둔해진 만큼 강서버 상대로는 더 많은 체력 소모가 불가피하다.
백핸드 다운더라인 역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며 신네르와 알카라스와의 랠리 대결에서도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포핸드는 과거보다 위력이 줄었지만 각도와 템포 조절로 보완하고 있다. 문제는 롱 랠리 시 체력 부담으로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조코비치는 하드코트에서 ‘철벽 수비+역습’ 능력이 뛰어나지만 빠른 공격 템포를 바탕으로 강력한 압박을 가하는 신네르와 알카라스를 상대로 조코비치가 단순하게 수비에 치중하면 밀릴 수 있다.
무엇보다 조코비치의 가장 큰 리스크는 체력과 회복력이다. 뉴욕의 더위와 습도 그리고 코트 내에 부는 변덕스러운 바람은 선수들의 체력을 무너뜨린다. 낮 경기에서는 높은 기온과 강렬한 햇볕이 선수들의 체력을 빠르게 소모시킨다. 반면, 야간 경기에서는 습도가 높아지면서 공이 무거워지고 바운드가 낮아져 롱 랠리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뉴욕의 날씨는 조코비치에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5세트로 치러지는 그랜드슬램에서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에이징 커브를 겪고 있는 조코비치가 초반 라운드에서 세트를 내주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코비치는 여전히 기술적 완성도와 경험 면에서는 정상급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가장 큰 적은 이제 상대가 아닌 나이와 체력이다. 북미 하드코트 시즌을 건너뛰고 US오픈에 직행한 그의 선택은 체력 때문이지만 동시에 경기 감각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신네르와 알카라스라는 두 명의 거대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신네르는 조코비치를 상대로 연승을 달리고 있고 알카라스는 빠른 템포와 강력한 공격으로 코트를 지배하고 있다. 조코비치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두 선수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조코비치는 여전히 압도적인 경험과 강력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결국, 관건은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가?’다.
조코비치가 다시 한번 신화를 써내려갈지, 아니면 세대교체의 파도에 밀려날지는 US오픈이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만약, 조코비치가 우승하면 오픈시대 이전과 이후 포함 남녀 선수 통틀어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게 되고 지난 2023년에 자신이 작성한 역대 최고령 US오픈 우승은 물론 켄 로즈웰(호주)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령 그랜드슬램 우승 기록(1972년 호주오픈, 37세 1개월) 역시 경신하게 된다.
<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 前 SPOTV 해설위원(loveis55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