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상추처럼

2025-07-23

지난봄.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축하 선물 겸 갖고 싶은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뜻밖에도, 가정용 스마트팜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제 손으로 직접 키운 채소를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답변은 아니었지만, 매우 건전하고 바람직한 데다 생산적이기까지 한 바람인지라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새로운 가전제품이 하나 늘었다.

가정용 스마트팜은 다소 거창한 이름에 비해서는 구조도 사용법도 단순했다. 물탱크에 물과 영양액을 비율에 맞춰 넣은 뒤, 씨앗을 뿌린 트레이를 끼우고, 일정 시간 동안 LED 전등을 켜두기만 하면 됐다. 첫 시작은 상추였다. 상추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랐다. 씨앗을 심고 이틀이 지나자 조그만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보름이 채 되기도 전에 풍성히 자라났다. 첫 수확을 축하하며 상추를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고기를 구웠다. 안온한 실내에서 비바람이나 해충의 위협 없이 그야말로 ‘온실의 화초’로 자라난 상추는 놀랄 정도로 연했고, 제 손으로 키운 식재료를 가족들과 함께 나눈다는 뿌듯함에 아이의 기분도 한껏 고양돼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상추는 끊임없이 자라났다. 줄기가 앙상해질 정도로 이파리를 떼도 며칠만 지나면 다시 무성해졌다. 처음에는 맛있게 먹던 아이도 곧 상추쌈과 상추샐러드에 질려가기 시작했다. 새삼 식물의 재생력이 놀라웠다. 사람을 비롯한 대부분 동물들의 몸은 고도로 분화돼 있기에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손상은 치명적이다. 잘려 나간 팔다리는 결코 재생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부위가 그 기능을 대신하지도 못하고, 머리나 심장처럼 주요 부위를 다치면 생존마저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식물은 다르다. 초원 가득히 돋아난 풀은 들소 떼가 아무리 짓밟고 뜯어먹어도 새잎을 틔우고 다시 무성해진다. 심지어 본체에서 잘려 나간 가지나 이파리가 뿌리를 내리고 온전한 개체로 자라나기도 한다. 사람으로 친다면 팔다리가 잘린 자리에 새로운 사지가 자라날 뿐 아니라, 그렇게 떨어져 나간 신체 일부에서 온전한 사람이 하나 더 복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경이로운 재생력은 식물의 몸이 가진 모듈성(modulity)의 특성이다. 동물의 신체가 저마다 다른 기능을 하는 분화된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진 복합체라면, 식물의 몸은 동일한 모듈 여러 개가 모여 이루어진 집합체이다. 얼핏 식물의 모듈화된 몸은 원시적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모듈의 집합체이므로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살아왔음에도 주변 상황에 특화된 신체 기관이 진화되기 어려웠고, 심지어 외부 위협에 대항해 피하거나 도망칠 수단조차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듈화된 몸이 지닌 원시성은 식물이 끊임없는 동물의 포식 활동에도 치명상을 입지 않고 몸을 복구하며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식물은 동물의 입질 따위에 크게 상처받지 않고, 사라진 부분을 다시 복구하며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 같은 식물의 독자적인 노선과 불굴의 재생력은 자신에게 필요한 열량은 스스로 생성할 수 있다는 독립영양생물(autotroph)이라는 믿을 구석에 기인한다. 식물은 광합성을 한다. 대지 위에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연료 삼아,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대기 중에서 잡아챈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이용해, 지구상 모든 생물의 기본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합성해낼 줄 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인 물과 이산화탄소와 햇빛만 있으면 오롯이 생존할 수 있다는 독립영양생물의 특성은, 움직일 수 없고 대응할 수 없어도 어쨌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꿋꿋함이 됐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식물은 분화된 기관이 주는 적합성이나 이동의 편리함을 ‘못’ 가지고 진화한 것이 아니라,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으니 굳이 가지려고 애쓰지 ‘않은’ 것에 가깝다.

요즘 아이의 스마트팜에서는 상추 대신 강낭콩이 자라고 있다. 엊그제 여린 콩잎 사이로 갓난아기 손가락만 한 콩깍지가 두어 개 열린 걸 보았으니, 다음주 즈음에는 직접 딴 콩을 넣고 밥을 지어달라 할 것이다. 기껏 맺은 콩깍지를 내준 식물은 포기하고 좌절하는 대신,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새로운 콩깍지를 여물게 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다.

근래 여러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고 좌절로 남아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파괴하는 절망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마음 아프다. 그들이 겪었던 아픔을 함부로 헤아리긴 힘들지만, 그렇기에 매일같이 무언가를 내주고도 여전히 꿋꿋한 식물의 든든함이 새삼스러운 여름날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