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다리서 도파민 터졌다…제마서 ‘응원뽕’ 맞자 생긴 일

2025-11-06

어쩌다 42.195㎞

러닝이 대세다. 유통업계는 2025년 한국의 달리기 인구를 1000만명으로 추정한다. 불과 5년 전까지 기자도 ‘안 뛰는’ 4000만 명 중 하나였다. 한데 코로나가 많은 걸 바꿨다. 동네에서 조깅을 시작했다가 마라톤 풀코스까지 뛰게 됐다. ‘45세 아재 기자’가 달리기로 고질병을 고치고, 지난 2일 ‘JTBC 서울마라톤(제마)’에 도전한 이야기를 전해드린다.

코로나 때 러닝 시작, 점차 거리 늘려

오랫동안 달리기를 꺼렸던 건 ‘콜린성 두드러기’ 때문이었다. 다른 운동은 다 괜찮았는데 달리기만 문제였다. 뛰다가 체온이 올라가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도져 걸음을 멈추고 온몸을 박박 긁었다.

코로나 시절의 ‘거리 두기’가 다시 뛰게 했다. 3㎞부터 거리를 슬슬 늘렸더니 어느새 7㎞도 거뜬히 뛰고 있었다. 겨울이면 심해지는 두드러기도 생기지 않았다. 체력이 좋아진 것보다 두드러기가 가신 게 더 큰 기적이었다.

2022년부터 재미 삼아 대회를 나갔다. 하프 마라톤을 세 번 경험하고 나니 엄두도 못 냈던 마라톤의 세계가 궁금했다. 지난해 11월 전남 순천 남승룡마라톤대회 풀코스를 덜컥 신청했다.

대회 전, 3개월간 홀로 열심히 훈련했다. 하지만 실전은 만만치 않았다. 32㎞ 지점에서 사점(死點)에 부닥쳤다. 다리가 안 움직였다. 달릴 의욕이 사라졌다. 남은 거리가 아까워 다리를 질질 끌며 간신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록은 4시간 8분.

마라톤은 희한하다. 대회를 망치면 다시는 달리기 싫은데, 어느 순간 다른 대회를 물색 중인 자신을 보게 된다. 올봄, 11월에 열리는 제마를 신청하고 여름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책과 유튜브를 보며 홀로 훈련했지만 자주 한계에 부닥쳤다. 안 되겠다 싶었다. 지난 8월 육상 국가대표 출신 박병권 감독이 운영하는 ‘BK러닝’ 강습에 합류했다. 스케줄대로 훈련하고, 자세도 점검받았다. 질주와 조깅을 반복하는 ‘인터벌’이나 30㎞ 이상 장거리 달리기 같은 고강도 훈련을 소화해 보니 혼자 달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박 감독은 “자신과 실력이 비슷하거나 한 수 위인 러너와 훈련해야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마라톤은 적절한 장비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일상화를 신고 달렸으나 발바닥과 종아리 통증을 겪은 뒤에야 러닝화다운 러닝화를 샀다. 지금은 데일리 러닝화, 레이싱화 등 용도가 다른 신발을 돌려 신는다. 무조건 남들이 좋다는 신발을 사면 안 된다.

서울 방이동의 러닝 전문숍 ‘플릿러너’ 신승백 사장은 “발 길이와 볼 너비뿐 아니라 아치 형태, 달리는 자세까지 살펴서 신발을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38㎞ 지점, 전쟁영화 보는 듯 곡소리

운명의 디데이. 제마 출발 지점인 서울 월드컵공원으로 이동했다. 3만4000명(풀코스 1만7000명, 10㎞ 1만7000명)이 운집한 분위기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같았다.

이날 아침 기온은 8도였다. 싸늘한 느낌이었지만 마라톤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대회를 앞두고 석 달간 월평균 180㎞를 달렸고, 다양한 훈련을 소화한 터라 크게 긴장하진 않았다.

오전 8시, 출발 신호가 울렸다. 곧 망원역에서 합정역으로 이어지는 얕은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편도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질주하는 러너와 응원단의 물결을 보니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제마의 가장 큰 재미는 코스다.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며, 한강 다리 3개를 넘나든다. 양화대교를 건너 여의도공원을 스친 뒤 다시 마포대교를 건넜다. 약 3㎞의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페이스가 살짝 처졌지만, 험난한 수준은 아니었다. 곧 종로구에 접어들었고, 광화문광장·흥인지문 같은 랜드마크를 지나치며 서울을 만끽했다.

군자사거리에서 우회전하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다. 갑자기 왼쪽 엄지발가락이 찌릿했다. 물집이 생긴 게 분명했다. 신발 끈을 느슨하게 묶은 탓이었다. 끈을 고쳐 매는 대신 보폭을 줄였고,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는 ‘힐 풋 주법’으로 자세를 바꿨다.

잠실대교에 오르자 롯데월드타워가 손에 잡힐 듯했다. 날씨와 응원 덕이었을까. ‘마(磨)의 벽’이라는 32㎞ 지점을 무난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이대로 끝나면 마라톤이 아닐 테다.

탄천 부근에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멀쩡하던 오른쪽 무릎이 저릿했고 골반이 시큰했다. 전기 고문 같은 통증이 몸 이곳저곳을 찔러댔다. 38㎞ 지점에 이르자 사방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주자가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고, 앰뷸런스가 바쁘게 오갔다. 전쟁 영화를 보는 듯했다.

곧이어 또 다른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가락지하차도를 빠져나오니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이 월드컵 축구 응원이라도 나온 듯이 열렬한 응원을 해줬다. 축제가 따로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한 중년 남성은 내 배번 표를 보고 “최승표, 파이팅!”이라고 외쳐줬다. 누군가 건네준 콜라를 한 모금 마시니 금지 약물이라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로만 듣던 제마 특유의 ‘응원뽕’을 경험했다.

올림픽공원이 눈에 아른거렸다. 힘을 쥐어짜 속도를 높였다. 마침내 결승점을 통과하고 시계를 확인했다. 3시간 49분 6초.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완주 메달을 걸고 뒤이어 골인하는 러너들을 한참 바라봤다. 나와 같은 ‘일등 아닌 보통들(윤상 ‘달리기’ 가사)’에게 갈채를 보내며 ‘파이팅’을 외쳤다.

취미로 달린지 5년, 이제 러닝의 맛을 조금 알게 됐습니다.

늦가을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는 러너들의 꿈의 무대, JTBC 서울마라톤에 도전했습니다. 45세 아재 기자의 인생 첫 메이저 대회이자 세 번째 풀코스 도전기를 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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