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42.195㎞
‘스스로 불러온 재앙’을 줄인 신조어입니다. 고(故) 신해철이 이끈 넥스트의 노래 ‘라젠카 세이브 어스’ 가사에서 유래했습니다. JTBC 서울마라톤(제마)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 저주 같은 말이 쫓아다녔습니다. 몸 성히 완주는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왜 풀코스 도전기를 쓰겠다고 손을 들었을까? 하루하루 부담은 커져 가는데 말 그대로 스불재여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11월 2일 제마를 완주했습니다. 기록이 궁금하신가요? 그건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신 이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더 나은 기록을 꿈꾸는 러너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록에 집착하는 러닝 문화는 솔직히 마뜩잖습니다. 한국인은 뭐든 열심히 하고 경쟁에 익숙하죠. 그렇다고 마라톤까지 성적표로 줄 세우는 건 불편합니다. 일반인에게 꿈의 기록이라는 ‘서브3(3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했든, 5시간이 지나 결승선을 겨우 밟았든, 혹여 낙오하고 포기했든 모든 러너는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신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은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위대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 이제 어쩌다 42.195㎞의 하이라이트인 ‘45세 아재 기자의 제마 풀코스 도전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깊은 가을 날, 서울 월드컵공원부터 올림픽공원까지 함께 달리는 마음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회 앞두고 당한 부상
왼쪽 다리에 통증이 온 건 지난여름이었습니다. 2025년 8월은 제가 달리기를 시작한 뒤 가장 많이 뛴 한 달이었습니다. 31일 중 엿새만 빼고 달렸더니 월 누적 거리가 221㎞에 달했습니다. 전달보다 60㎞를 더 달린 게 무리였는지 ‘장경인대증후군’이 찾아왔습니다. 장경인대증후군은 러너가 흔히 겪는 부상 중 하나로, 허벅지 바깥쪽 측면과 무릎이 저릿한 증상을 말합니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무렵 겪었던 부상인데, 하필이면 대회가 임박한 시점에 재발해 당혹스러웠습니다.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근력 보강 운동과 스트레칭에 더 매진했습니다. 장경인대증후군은 엉덩이 근력이 약하거나 고관절 비대칭이 심할 때 생기는 부상입니다. 부상에서 벗어나려고 엉덩이 근육 강화 훈련에 집중했습니다. 하루도 안 빼먹고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엉덩이가 불타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무릎 통증은 딱히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제마 사흘 전엔 몸살이 와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았습니다. 체감 기온이 0도 가까이 떨어진 새벽에도 훈련을 강행했던 게 화를 불렀나 봅니다. 어쩌면 마라톤이 일깨워준 건 ‘내가 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헛된 기대는 접으십시오. 달리기를 열심히 하면 건강해지긴 하지만, 인간이 ‘로보트 태권브이’로 거듭나는 건 아니랍니다.
드디어 디데이. 오전 4시40분 일어나자마자 계란국과 쌀밥을 먹었습니다. 대회 복장을 하고 양 무릎에 스포츠 테이프를 짱짱하게 붙인 채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 도착하니 2002년 한·일 월드컵 현장에 온 듯했습니다. 대회 참가자만 3만4000명(10㎞ 1만7000명, 풀코스 1만7000명)에 달했고, 행사 관계자와 자원봉사자에 응원단까지 더해져 수십만 명이 운집한 것 같았습니다. 이런 열기를 느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용변을 마친 뒤 지난 서너 달 함께 훈련한 BK러닝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서로 선전을 기원하고 단체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출발 시각 8시가 다가오자 각자 배정된 그룹으로 흩어졌습니다. 저는 4시간 이내 완주 기록이 있는 C그룹에 배정됐습니다. 후미에 자리를 잡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작은 목표를 되새겼습니다. 레이스 도중 화장실 안 가기, 일정한 페이스 유지하기, 걷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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