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능력은 물론 뇌 기능이 급속히 퇴화하는 노화는 더는 자연의 섭리가 아닙니다. 건강을 유지한 채 천천히 늙어가는 ‘젊은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중엔 80대에 40대 같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수퍼에이저들도 나타납니다. 공복을 유지해야 한다, 근력 운동을 해야 한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행복한 100세 인생을 사는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100세 이상 장수한 사람들의 공통점
▶장수 어르신들이 가장 사랑한 식사법
▶자신에게 맞는 운동 루틴 찾는 법
▶장수를 부르는 가치관과 마인드
▶나이 들어서도 사회에서 존경받는 법

“나이 많고 화려하지 않아도 무대로 불러 준다면 동에서도 번쩍 서에서도 번쩍~ 노래면 쌩하고 갑니다.”
지난 5월 14일 인천 계양구 솔담뮤직 녹음실. 국내 최고령 현역 가수 박정란(95·이하 경칭 생략)씨가 노래 연습에 한창이었다.
그는 남들이 은퇴할 81세에 첫 앨범을 내고 매년 신곡을 발표하고 있다. 연습 중인 곡은 92세 때 발표한 ‘내 이름은 명가수’.
누가 나이가 들면 초라해진다 했는가. 뽀얗고 탄력 있는 피부가 생기있게 빛났다. ‘정정하다’ 수준이 아니라, 믿기 힘든 동안이었다.
피부는 건강의 척도. 실제 작년 건강검진에서 ‘신체나이 70대’가 나왔을 정도로 세월을 비껴갔다.

노래는 원래 체력전이다. 그런데 100세에 가까운 박정란의 연습 강도는 아이돌 못지않다. 보통 성인이 3시간 열창하면 보통 300㎉가 드는데 한번 연습하면 반나절은 훌쩍 넘긴다.
저 에너지 도대체 어디서 났을까? 그는 처음엔 “노래가 만병통치약이에요”라는 말만 했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노래도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리 없었다. 최측근에게 취조에 가깝게 물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노만 드세요. 기력 떨어지면 꿀 조금 뿌려서 드시고요. 참 그걸 빼먹었네요. 매일 드시는 게 있는데…”(솔담뮤직 김신일 대표)
“우리 이모가 잘 드시는 게 있어요. 말씀 안 하시던가요? 25년 전부터 하루 한 번 꼭 챙겨 드셔요.” (조카 한순정씨)
역시나 혼자만 알고 싶은 ‘비밀병기’가 있었다.
박정란이 건강을 적극적으로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60대 후반이었다. 감기가 잘 낫지 않았고 체력이 금방 떨어졌다.
그때 우연히 접한 게 있다. 조카 한씨는 “당시엔 한 통에 15만원이 훌쩍 넘는 수입 제품을 박스째로 사서 보물단지처럼 드셨다”고 전했다.
〈100세의 행복〉에선 장수하는 것도 대단한데 노년에 자아실현까지 하는 박정란의 건강 비결을 담았다. 취재진에게도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식단은 물론, 수십 개의 노래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암기력의 비법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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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에 가요무대 오디션 본다…‘얼죽아’ 할머니의 마법가루
올해 98세 노인의 손목엔 파스와 보호대가 단단히 감겨 있었다. 시대를 이끌던 영웅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걸까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손목은 왜 그러세요? 넘어지셨어요?”
“아니, 골프 치느라 많이 써서 평소에 아끼는 거야.” 60년 전 시작한 골프는 지금이 몰입감 절정이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 매일 체력 단련을 하고, 스쿼트 같은 보강 운동까지 한단다.
노인을 향한 흔한 편견을 뒤흔드는 주인공, 김두만(98) 전 공군참모총장의 원래 무대는 하늘이었다.
전장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장군은 뜻밖에도 80대 때 폐병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 서 있을 힘도 없고, 밥숟가락 하나 들기도 버거웠다.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장군을 살린 건 ‘오트밀’이었다. 이때부터 10년째 그의 아침 식사는 오트밀과 치즈 등이 담긴 황금 레시피로 차려진다. 그가 날마다 철칙처럼 지킨다는 운동 루틴(routine)도 입수했다.
〈100세의 행복〉 김두만 장군 편은 그가 전쟁과 병마를 이겨낸 인생 비법서다. 맨손으로 폭탄을 던지며 북한군과 맞섰던 전쟁 영웅이 이제는 노년의 삶을 단련하는 경험담을 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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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구때 전투기 떴다…98세 ‘공군 영웅’의 황금 식단
다음은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증명한 105세 할아버지의 여행 기록이다.

모태신앙이었던 김영래(105)씨는 67세 되던 1987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평생소원을 이뤘다.

70세 되던 1990년 페루에서 해발고도 2437m에 있는 공중도시 마추픽추에 올랐다.

1993년 73세에 호주에서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 다시 사랑을 배웠다.

1996년 태국에서 메오족 원주민 문화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노래잔치를 벌였다.

81세가 되던 2001년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 20대 대학생과 친구가 됐다.

내 나이 105세, 이만 한 사진첩을 가진 사람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걸?
두툼한 앨범 다섯 권, 1000여장의 사진에 29년 동안 30여 개국을 홀로 누빈 발자국이 빼곡하다.
누군가는 노년을 정리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00세의 행복〉 15화의 주인공 김영래에게 노년기는 인생 2막의 시작점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후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배낭 하나 둘러메고 길 위에 나섰다. 62세 늦은 나이에, 영어에 능숙하지도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빛나는 두 번째 인생을 만들어냈다.
이런 그와 마주하니, “105세 맞아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입에 모터라도 단 듯 수다맨처럼 100년간의 인생 여행기를 쏟아냈다. 수십 년 전 바람 냄새까지 어제 일처럼 떠올리는 선명한 기억력이 놀라웠다.
지금도 그의 현관엔 배낭이 기대어 있고 책상 위엔 세계지도가 펼쳐진다. 여행이 그를 오래 살게 했는지, 오래 살아서 더 멀리 간 건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105세가 된 지금도 인생 3막, 4막 그다음 페이지를 넘길 힘을 갖고 있다는 것. 힘의 원천을 쫓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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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서 새 여친과 사랑 빠졌다…‘105세 여행가’ 놀라운 치유
100세 시대를 위한 가장 지적인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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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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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희(jeong.saehee@joongang.co.kr), 김서원(kim.seowon@joongang.co.kr), 서지원(seo.jiwon2@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