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여년간의 사법 리스크에 종지부를 찍고 경영 전면에 나설 지 주목된다.
이 회장은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10년 만인 2022년 10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부회장 시절부터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2017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것까지 포함하면 사법 리스크 없이 온전히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은 총 13년 중 3년여에 불과하다.
◇불투명한 미래 동력…책임경영 체제 갖추나
현재 삼성전자는 핵심 3개 사업 축이 모두 전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대표 사업인 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추월당했고 실적도 부진하다. 스마트폰과 생활가전은 중국이 빠르게 기술과 디자인 경쟁력을 갖추며 위협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미래 동력인 인공지능(AI)과 로봇 사업에서도 과거와 같은 초격차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AI 기술 경쟁이 치열하지만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대표 AI 기업으로 안착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무엇보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이 대규모 투자로 빠르게 기술력을 높이면서 미래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 글로벌 시장을 호령해온 메모리까지 중국이 위협하고 있어 그룹 전반에 걸친 대대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재판에 넘겨진 후 구속됐고, 약 3년 반 만인 2020년 9월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다시 기소됐다.
대법원 판결까지 총 4년 10개월 동안 1·2심 재판은 총 113회 열렸다. 이 중 대통령 해외 순방 등 불가피한 이유로 불출석한 날을 제외하면 총 102회(1심 96회, 2심 6회) 출석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고 사업에 집중해야 할 경영인이 지나친 사법 리스크로 불필요하게 역량을 낭비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 회장이 제대로 된 경영능력을 평가받을 기회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 영향으로 2017년 2월 그룹 체제를 해체하고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그룹 전체 전략을 담당했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대신 계열사별 사업을 지원하는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사법 의혹을 완전히 해소함에 따라 경영 체계에 변화를 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당시 이 부회장이 그룹 해체를 직접 주문하고 불법 의혹을 해소하는 데 집중해온 만큼 적극적으로 경영 체계에 변화를 가하는 데 따른 부담도 크게 줄었다.
특히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해 공식적인 책임경영 전면에 나서는 데 따른 우려도 해소됐다.
이 회장은 2019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후 비등기 이사로서 경영하고 있다. 삼성 안팎의 경영 환경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책임경영에 대한 목소리는 계속 커져왔다.
다만 더 강력해진 상법개정안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사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경제계는 행동주의펀드나 해외 펀드들의 배임혐의 제기 등 소송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등기이사로 복귀하면 또다시 잠재적 사법 리스크가 생기는 셈이어서 새로운 부담이 될 수 있다.
◇진짜 경영능력 평가는 지금부터
반도체 사업 위기로 촉발한 삼성의 경영체계 개편과 조직문화 개선 필요성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DX부문장 직무대행 체제를 안정화할 필요도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사업지원TF를 정식 조직으로 승격하거나 과거처럼 그룹 전체 경영 전략을 긴밀하게 짤 수 있는 미래전략실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조직이 방대한 만큼 계열사 자율경영 체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기술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적기 투자 결정에 실기한 것은 기존 경영 체계의 한계 사례로 지속 거론되고 있다.
과거의 사법 리스크를 딛고 일어서게 된 만큼 조직 변화에 세대교체를 더해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단행한 2025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쇄신을 기했지만 핵심 경영진에 대한 대대적인 세대교체는 없었다. 사업 위기의 폭이 깊어 대대적 변화보다 안정을 꾀하는 전략이 우선이었다. 상존하는 사법 리스크 구도에서 완전한 세대교체를 단행하기 어려운 한계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 52시간 근로제, MZ세대 직원 유입 등 변화한 조직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경영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 성장에 대한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도 이 회장에 주어진 숙제다. 경영 환경이 달라진 만큼 삼성의 성공 방식을 새로운 각도로 적용하는 시도가 요구된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