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선 외국인 선수 제한, 풀어야 합니다."
"선수 이원화 가지고는 ACL 나갈 수 없습니다. 1대1로 붙어도 여건상 쉽지 않은데, 이원화하면 나가는 의미가 없죠. 경험 쌓으려고 나간다? 그건 돈 아깝죠."
울산의 사령탑 신태용 감독이 촌철살인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K리그에서 벼랑 끝 위기를 겪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K리그가 경쟁력을 갖추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쩌면 필요한 고언이다.
■ACL 미디어데이지만…"당장은 리그가 중요한 게 맞아"
오늘(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는 2025-26시즌 ACL에 참가하는 K리그 4개 팀(울산, 강원, 서울, 포항)이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4개 팀의 사령탑들은 ACL에 대한 당찬 기대감보다는 일단 당장의 리그 경기에 대한 고심이 깊어 보였다. 창단 첫 ACL에 출전하는 강원의 정경호 감독은 "ACL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리그가 중요한 것은 맞다"면서 "리그와 ACL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잘 이원화해 보겠다"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 역시 "일단 지금 리그 성적이 안 좋기 때문에 상위 스플릿 올라갈 때까지 리그를 중심으로 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고, 김기동 감독은 "이원화라기보다는 선수들 부상을 고려하면서 '유연한 로테이션'을 돌려야 하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박태하 감독도 "홈과 원정 경기를 잘 구별하고, 원정 경기는 상황에 따라서 출전 시간이 적었던 선수들에게 기회가 갈 수도 있다. 홈에서는 전체적인 컨디션을 봐서 대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결국 사령탑들은 ACL 경기마다 걸린 큰 상금보다 당장 구단의 1부 생존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ACL에서의 성공? 외국인 선수 제한 풀어야 한다"

지난 시즌 ACL에선 광주가 8강까지 진출하며 분전하긴 했지만 8강전 알힐랄엔 0대 7 완패를 당했다. 덩달아 K리그 3연패로 왕조를 구축했다고 평가받았던 울산이 정작 ACL 조별리그에선 1승도 챙기지 못한 채 물러나면서 K리그 축구 팬들에게 씁쓸함을 남겼다.
ACL의 시스템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외국인 선수 쿼터제가 사라졌고, 이에 걸맞게 사우디나 카타르 등 중동 리그 팀은 물론 동남아 팀들도 자국 선수들 대신 외국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경기에 나서면서 K리그 팀들이 리그를 병행하며 '베스트11'을 내세워 경쟁하기엔 쉽지 않은 구조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K리그에서도 외국인 선수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취지로 흐른다.
사령탑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전에 연맹 기술위원장을 지내며 관련 고민을 해봤다는 박태하 감독은 " K리그가 산업에 비해서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이 문제가 해결될 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밝혔다.
반면, 마이크를 잡은 신태용 감독의 발언은 촌철살인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외국인 쿼터는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ACL에 나가는 의미가 있다. 동남아 팀인 조호르는 11명이 스페인 선수 위주로 해서 출전하고, 사우디는 ACL 뛰는 선수 따로 리그 뛰는 선수 따로 있다.
개인적으로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 4명 뛰는 것 오케이다. 하지만 ACL 나가는 팀에겐 제한을 풀어라. 돈 있는 구단은 좋은 선수들을 영입할 거고, 재정이 어려운 구단도 외국인 선수들을 잘 뽑아와서 활용하면 된다. 이런 부분은 기자분들도 마찬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조해서 (여론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연결된 '추춘제 전환'에 대해서도 신 감독은 "우리나라도 분명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인 인프라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함을 전제로 했다. "우리나라는 너무 춥기 때문에 그라운드의 열선을 깔거나, 가장 추울 때 휴식기를 갖는 것 등이 바람직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ACL 나가서 모두 예선 탈락? 의미 없다…경험 쌓으려고 나가는 건 돈 아까워"

신태용 감독은 과거 성남 시절 선수와 감독으로 ACL 우승 경험이 있는 독보적인 인물.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아시아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한 신태용 감독의 답도 결국 앞에서 강조했던 제도 변화와 투자로 이어졌다.
신 감독은 "그때는 중동이나 일본 이런 팀들이 지금처럼 외국인 선수에게 투자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보다 10배 이상 투자가 많다"면서 "리그에서는 제한이 있더라도 ACL에서는 풀어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 감독은 "선수 이원화로는 ACL에 나갈 수 없다. 1대1로 붙어도 여건상 쉽지 않은데, 이원화하면 나가는 의미가 없다. 경험 쌓으려고 나가는 건 돈 아깝다. 저는 우리가 아직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생각하는데, ACL에 나가서 모든 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면 그건 의미가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직언했다.
당장은 리그에서의 승패에 사활을 걸어야만 하는 신태용 감독이 던진 촌철살인. 과연 ACL에 나가는 K리그 팀과 제도의 변화를 이끄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