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소설 속 정부인은 매춘부"…이문열 지금도 화난다

2025-10-28

이문열, 시대를 쓰다

작가 이문열만큼 한국 사회에 뜨거운 이름도 없습니다.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던 최고의 인기 작가. ‘책 장례식’이라는 문화 참사를 겪어야 했던 불행한 소설가. 강경한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당대의 논객. 이런 다면성, 모순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서 가능했던 걸까요. 왜 우리는 그에게 뜨겁게 열광하는 한편 때때로 거칠게 비난했던 걸까요. 작가 인생 50년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면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나는 반(反)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진지하고 성실한 페미니즘에 저항할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내 오랜 소신이다. 세상이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편성돼 여성은 그만큼 뿌리 깊은 억압과 질곡에 짓눌려 오지 않았나. 시대착오적인 반페미니즘 주장은 발붙일 자리가 없다.

하지만 20여 년 전 『선택』이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나는 뜻밖에도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는 오해를 받았다. 살면서 내가 겪은 여러 오해 중 하나다. 심지어 내가 여권주의자 대부분을 성도착자로 간주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것도 평소에 말이 잘 통해, 장난삼아 내가 우리 편이라고 말하곤 했던 한 여교수가 신문에 그렇게 썼다.

『선택』은 사실 우려와 격려의 마음에서 쓴 소설이었다. 가령 당시 남성들을 향해 성난 외침을 쏟아내는 여성 중 일부가 여성 해방과 성적인 방종을 단단히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종교집단 초기의 전도열(傳道熱) 비슷한 전파열(傳播熱)마저 느껴졌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전파열이 있다고 하지 않나. 소수에서 벗어나려는 다수 확보의 욕구다.

숫자가 줄고 있기는 하지만 남성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만큼 자신도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는 소박하고 겸손한 여인들은 반대로 응원하고 싶었다. 바깥에는 집안 자랑, 문중에는 불경(不敬)의 죄가 될 수 있음에도, 내게 직계 조상 되는 조선시대 선조~숙종 연간의 정부인(貞夫人) 장(張)씨를 내세워 당대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제시한 게 『선택』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소설은 내 기대와 딴판으로 받아들여졌다. 계간 ‘세계의 문학’ 1996년 가을호에 전체 4부 가운데 1부를 게재하자마자 페미니즘 비판 논란에 휩싸였다. 무슨 여성 강좌 같은 이름의 여성 단체, 여성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내 집과 출판사 민음사에 빗발쳤다. 내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전화 끊기 바쁘게 또 전화가 왔다. 출판사 역시 한때 전화 받느라 일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한 여성 단체라는 곳은 내 아내가 전화를 받자 그러더란다. “남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저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느냐”고. 소설의 4분의 1만 공개됐을 뿐인데도 그랬다.

연재를 중단하고 이듬해인 1997년 3월 서둘러 소설책을 내자 나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방면의 논객들이 가세했다. 방송인 전여옥, 시인 겸 문학평론가 김정란, 고미숙 등이 문학평론가 직함을 달고 칼럼이나 에세이 형식으로 한마디씩 보탰다. 돌이켜보면 매체들이 선동적으로 시비를 붙이는 바람에 말썽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걸 굳이 논의라기보다는 말썽이라고 부르고 싶다. 말썽이 증폭돼서였는지 소설책 『선택』은 출간 2주 만에 7만 부, 2개월 만에 15만 부, 그해 연말까지는 25만 부가 팔렸다.

소설 『선택』 논란 첫 페미니즘 잡지 ‘이프’ 창간

『선택』이 휘말린 말썽은 역설적으로 페미니즘 확산에 기여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06년 그들 식으로 표현하면 종간이 아닌 완간된 국내 첫 페미니즘 잡지 ‘이프(if)’가 1997년 5월 『선택』을 둘러싼 논란의 한복판에서 창간됐다. 이미 온 세상이 페미니즘의 사고체계와 주장대로 진행되는데도 중세의 마녀사냥식 페미니스트 사냥이 시작됐다는 게 그들의 창간 명분이었다. 물론 그 사냥을 내가 시작했다는 게 그들의 시각인 듯했다.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이 창간 특집이었다. 특집 안의 ‘예술과 폭력 사이에서 꽃피는 남근의 명상’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에서 송기원의 『여자에 관한 명상』, 내 소설 『선택』, 김원우의 『모노가미의 새 얼굴』 등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30~50대 남성 작가 네 명의 작품을 싸잡아 비판했다. 문화계 전반으로의 논란 확산도 불사하겠다는 식이었다. 한 여성 필자는 내 소설의 문투를 고스란히 흉내 내 ‘『선택』의 작가 이문열 서생에게-한 조선조 여인의 일갈’이라는 제목의 글을 편지 형식으로 싣기도 했다. 한낱 서생(書生)이라니.

환원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곤 하는 문학평론가들 사이에 『선택』을 쓰게 된 내 ‘선택’이 다분히 정치적·전략적이었다고 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페미니즘을 못마땅해 하는 상당수 보수층의 심리를 내가 간파해 냈다는 것이다. 사회 구조의 희생양이었던 여성들의 보상심리를 자극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내가 관심 끌기 위해 도발했다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이 『선택』을 썼다. 두어 가지 동기가 있는데 하나는 내 아내와의 관계가 있다. 아내는 소설의 정부인 장씨처럼 현모양처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인데, 『선택』을 쓰기 7~8년 전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내가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고 허망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아이들이 웬만큼 자라나 이제는 자기 품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내가 쓴 소설의 적어도 3분의 1의 지분은 당신에게 있다고. 그런 말로 위로해도 소용이 없었다. 진작에 밖에 나가 무엇이든 간에 해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공허감에 빠진 중년 여성 라디오 사연이 계기

또 다른 계기는 『선택』을 쓰기 한 해 전쯤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들은 어떤 아주머니의 사연이 된다. 그는 상당히 성공적인 삶을 산 분이었다. 3남매를 모두 일류대학 좋은 과에 입학시켰고, 남편도 결혼할 때는 신통치 않았는데 당시에는 직원이 400~500명에 이르는 중소기업 사업가로 성장해 있어 모든 게 잘 됐다고 할 수 있는 경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자기만 아무 할 일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이상한 아주머니가 돼 있더라는 것이었다. 자기 인생을 낭비했고, 아무런 성취도 없노라고 한탄했다. 곧이듣기지는 않겠지만 ‘당신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았고, 당신 인생 낭비한 거 아니다’라고 그 아줌마에게 외쳐주고 싶었다. 당신은 훌륭한 선택을 했고, 훌륭하게 자기 성취를 한 거다. 그 말을 소설에서 꼭 해주고 싶었다.

내 나름으로는 자신도 있었다. 『선택』의 어떤 대목은 지금 읽어 봐도 무척 매섭게 느껴진다. 나중에 어떤 말썽에 휘말릴 수 있겠다는 걱정 없이 거침없이 써 내려 간 글이다. 당시 나는 세상에 허점이 많은 것처럼 내 말이 빠져나갈 구멍도 얼마든지 있다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남녀 간의 싸움이 악다구니로 흐르면 한없이 험해질 수 있지만 『선택』이 그런 빌미를 제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장난기도 발동했던 것 같다. 그러니 ‘황홀한 반란’ 같은 여성 작가의 소설 제목도 들먹였겠지.

여성 작가들 소설 제목 활용한 건 사과

이혼과 간음을 부추기는 수상스러운 사례라도 되는 것처럼 동료와 후배 여성 작가의 작품 제목을 내 소설에 활용한 것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사과했다. 1997년 4월 29일자 중앙일보 대담에서 문학평론가 권택영씨가 이혼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지는 않을 텐데 그런 대목에서 여성 작가들의 소설 제목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나는 동갑내기 소설가 이경자의 소설 제목 ‘황홀한 반란’이나 후배 작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같은 제목들이 그릇된 여성운동을 더할 나위 없이 압축적으로 드러냈다고 여겨 빌려 쓴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 작가들에게 해를 끼쳤다면 죄송하다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계속)

“소설 속 정부인은 매춘부.”

28년 전, 전여옥의 한마디에 이문열은 지금도 분노한다.

“나는 반(反)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를 ‘페미니즘의 적’으로 몰았다. 『선택』을 읽지도 않고 비판하던 이들에게, 이문열은 지금도 단 한 단락만큼은 꼭 들려주고 싶다는데, 어떤 문장이었을까. 또 전여옥의 비판에 이문열의 날 선 응수까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문열, 시대를 쓰다’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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