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親)팔레스타인 시위의 근원지로 꼽힌 미 컬럼비아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조금 삭감 조치에 끝내 굴복했다. 컬럼비아대는 연방 정부의 보조금을 복원하는 대가로 수천억원대의 벌금을 내고 시위에 가담한 학생들을 징계하기로 했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컬럼비아대는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벌금 2억 달러(약 2740억원)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캠퍼스 내 반이스라엘 분위기를 방치하고 충분한 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컬럼비아대는 앞으로 입학 및 채용 과정에서 인종을 고려하는 관행을 중단하고, 교내 유대인 혐오 행위를 근절하는 조치를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해 소수인종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역차별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일부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우회적으로 인종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또 연방 정부와 공동으로 선정한 독립 감시기관으로부터 6개월마다 합의 이행 진척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정부가 컬럼비아대를 상대로 진행했던 6건 이상의 민권법 위반 혐의 조사는 종결하되 2100만 달러(약 287억원)의 조사 비용은 대학이 지불하기로 했다.
클레어 십먼 컬럼비아대 총장대행은 "이번 합의는 지속적인 연방 정부의 감시와 제도적 불확실성이 지속된 이후 중요한 진전을 의미한다"며 "연방 정부와의 필수적인 연구 파트너십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신중하게 마련됐다"고 했다.
"트럼프, 연구 자금 무기화…다른 대학도 영향"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학가의 반이스라엘 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자금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했는데, 대상이 된 대학 중 처음으로 합의한 것이다. 컬럼비아대는 매년 연방 정부로부터 13억 달러(약 1조 7755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는데, 정부는 지난 3월 4억 달러(약 5576억원)를 취소한 데 이어 복지부와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보조금을 동결했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삭감한 예산은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컬럼비아대 측은 "과학 연구 자금 지원이 중단된 것이 시급한 사안"이라며 "수십 년간의 연구를 위태롭게 하고 연구의 우수성을 보존해야 하는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컬럼비아대는 합의에 앞서 시위에 가담한 학생 70여명에게 중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대학 측은 지난 22일 성명에서 "개인별 징계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지만 버틀러 도서관에서 발생한 사건 관련 징계에는 근신, 정학 1~3년, 학위 박탈, 퇴학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는 행정부와 협상을 진행 중인 다른 대학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하버드대로선 컬럼비아대의 사례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에 이어 대학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며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NYT는 "백악관과의 거래는 컬럼비아대에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한다"며 "이는 사립대학의 독립성에 도전하고 캠퍼스의 불안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이와 무관한 연구 자금을 무기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