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후 5일차에 병원에서 수액주사를 맞은 뒤 기도가 막혀 영구 뇌손상을 입은 아이에게 병원 측이 17억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최모(41)씨는 3년 전 제왕절개로 둘째를 낳았다. 3090g의 건강한 여자아이였다. 울음소리, 근육의 힘, 자극에 대한 반응이 모두 좋았다. 기형 검사 결과도 정상이었다. 다만 신생아 황달 증상이 보여 태어난 지 5일째 되던 날 입원치료를 권유받았다. 최씨는 신생아실에서 의사와 상담한 뒤 아이 입원을 결정하고 산모 병실로 돌아왔다.
1시간 30분 뒤, 최씨는 신생아실에서 “보호자와 함께 내려오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약 30분을 면담실에서 기다린 끝에 만난 의료진은 최씨의 어깨를 붙잡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액을 맞히기 위해 바늘을 꽂는 중 아기에게 심정지가 1~2분 왔다. CPR을 실시했으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거였다. 아기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첫째와 산책을 하던 아이 아빠도 부리나케 울산대병원으로 왔다. 울산대병원에서 12㎝ 깊이로 꽂혀 있던 기관삽관 튜브를 10㎝로 빼내자 2분 뒤 산소포화도는 90% 이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2시간 30분 동안 저산소 상태에 노출된 뒤였다. 이 동안 영구적인 저산소성 뇌손상이 진행됐다. 올해 3살이 된 김민서(가명) 양의 이야기다.

사고의 경위는 이랬다. 이날 아침 9시, 간호사가 김양에게 분유 20cc를 먹였다. 황달 수치가 떨어지지 않고 김양이 분유를 잘 먹지 못해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했다. 입원 결정 후 간호사가 수액용 정맥주사를 맞혔다. 분유를 준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주삿바늘에 찔린 김양은 울면서 분유를 토했고, 토한 분유가 기도로 들어갔다. 즉시 피붓빛이 푸르게 변하는 청색증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약 1시간 30분 동안 기관 삽관, 심장 마사지를 실시하고 약물을 투여했지만 산소포화도는 계속 60~70%에 머물렀다. 이에 병원 측은 오전 11시쯤 산모에게 상황을 고지했고,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결정됐다.
김양은 뇌손상에 따른 인지장애, 언어장애 등 발달 장애를 갖게 됐다.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며 대뇌피질이 거의 소실됐다. 현재 39개월인 김양은 혼자 일어서거나 걷기 힘들고, ‘엄마·아빠’ 등 10여개 단어만 말할 수 있다. 손가락이 안으로 말려 혼자 밥을 먹는 등 일상적인 동작 수행도 도움이 필요하다. 최씨는 매일 오전 아이를 데리고 재활병원에 가서 걷기 훈련 등 재활치료를 받게 하고 있다.
최씨 부부는 딸을 대신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3세의 김양이다. 김양의 부모는 ▶병원 측이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분유가 채 소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사를 놨고 ▶기도가 막혔을 때 제대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으며 ▶부모에게 신속하게 상황을 알리지 않고 신속하게 전원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법원 “충분한 시간 두지 않고 주사…전원 결정도 늦어”

법원은 김양의 손을 들어줬다. 울산지법 민사12부(재판장 이연진)는 병원 측이 김양에게 이자를 포함해 약 17억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김양에게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벌 수 있었을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 앞으로 필요한 치료비, 김양을 곁에서 간병하는데 필요한 금액, 위자료 8000만원 등이다.
법원은 사고의 원인이 주사 처방에 있다고 봤다. 법원은 “병원 의료진이 충분한 시간을 두지 않고 수유 후 30분 만에 주사를 처치해 역류로 인한 기도폐색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영유아는 식도가 짧고 삼키는 힘이 약해 작은 자극에도 쉽게 기도가 막힐 수 있는 점, 따라서 통상적으로 수유 직후에 정맥주사를 놓지 않는 점, 주사를 맞기 10분 전까지만 해도 김양의 활력징후 및 전신 상태가 양호했던 점 등을 고려했다.
병원에서 신속하게 부모에게 상황을 알리지 않고 전원 조치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잘못이라고 봤다. 법원은 “의료진은 전원 필요성이 있는지 신속히 판단했어야 하고, 보호자에게 상태를 상세히 설명했어야 한다”며 “그런데 병원 측은 약 1시간 30분이 지난 뒤 비로소 전원을 결정하고 이를 김양의 어머니에게 설명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김양은 울산대병원으로 전원돼 응급처치를 받은 후 회복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병원 측이 응급처치를 소홀히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책임 범위를 80%로 제한했다. 김양에게 청색증이 발생한 즉시 심장 마사지, 앰부배깅, 기관내 삽관 등을 실시한 점, 에피네프린 투여 등 조치가 적절했다고 본 의료 감정 결과 등을 고려했다. 최씨는 “첫째를 재워 놓고 소송을 준비하며 매일 밤 울었다”며 “응급 처치만 제대로 됐어도 민서가 덜 다쳤을 텐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인정이 안 된 게 아쉽다”고 했다.
병원 측은 “신생아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후유증으로 김양의 상태가 악화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현재 항소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병원 측은 “본 사건은 신생아 주사 과정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유로 발생한 불가항력적 후유증”이라며 “발생 즉시 신생아실 전문의의 의학적 소견에 따라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