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2차 베이비부머 월드
이재명·김민석·정청래·장동혁·임종석(이상 정치인)·김범수·김택진(기업인)·김명환(노동운동가)·봉준호·유재석·강호동·박진영·방시혁(문화예술인)….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제2차 베이비부머라는 점이다.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대학으로는 83학번부터 93학번까지,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와 X세대(70년대생)에 걸쳐있는 이들 세대는 정치인부터 자수성가 기업인, 노동운동가 그리고 문화 예술인까지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를 두텁게 형성하고 있다. 10여 년에 속하는 단일 세대가 정치부터 문화예술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코어·주류를 형성한 유일한 연령 집단(코호트)이다. 그동안은 부각되어온 86세대나 X세대도 따지고 보면 제2차 베이비부머의 하위 집단 성격이다.

‘베이비부머’란 표현에서 드러나듯, 일단 숫자가 많다. 연간 80만~90만 명가량 출생했다. 945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유권자(4440만 명)의 21%가량을 차지한다. 22대 국회에는 157명(52.3%) 의원이 이 세대에 속한다.

유독 어떤 이들에겐 모든 것이 때 맞춰 일어난다. 제2차 베이비부머들이 그랬다. 대학에 갈 때는 졸업정원제 등의 여파로 입학 정원이 크게 늘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대학생이 되었다. 어수선한 시국 탓에 강의실 대신 거리에 설 때가 많았지만, ‘3저(低) 호황’ 덕분에 자격증 하나 없이도 어렵지 않게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취업 후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윗세대가 대거 퇴장해 일찍 길이 열렸고, 제1기 신도시 개발로 ‘내 집 마련’이 부모 도움 없이 가능했다. 집을 사고 나니 부동산은 폭등했고, 큰 노력 없이 ‘자산가’가 됐다.


자녀를 키울 때는 초·중학생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됐고, 중장년에 접어들자 ‘문재인 케어’로 부모님 부양 부담이 줄었다. 은퇴가 가시화되자 20년 가까이 멈춰있던 국민연금 개혁이 ‘더 내지만, 더 받는’ 방식으로 처리됐다.

대한민국의 국력 상승기의 절정에서 혜택을 누렸던 이들은 이제 정년 연장(60세→65세)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0년 민주화운동 사면·복권으로 정치계 입성이 가능해졌던 이들이 지난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법’도 추진 중이다.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에게도 혜택이 주어지는 법안이다.

어느 시점에선가 최대 ‘표심 집단’이 되면서 이들에 유리한 제도들이 속속 도입되는 모양새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공통된 기억과 연대의식으로 단단한 결속력을 갖고 있고, 숫자도 많기 때문에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법안과 제도를 밀어붙일 수 있다”고 봤다.
청년 때 학생운동·3저호황·벤처붐 경험…기득권 된 뒤 입학사정관제·정년연장 과실
제2차 베이비부머들은 시대의 운(運)을 쥐고 출발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격증’인 대학이 그랬다.
1980년 신군부가 과열된 과외 해소와 교육 정상화를 내걸고 내놓은 7·30 조치는 대학 입시의 관문을 넓혀줬다. 대학 입학정원제를 졸업정원제로 바꾸면서 대학들은 졸업정원의 130~150%까지 신입생을 더 뽑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시행한 1981학년도는 전년도보다 10만1045명이 늘어난 30만6880명이 대학으로 들어갔다. 대학 취학률이 11.4%(1980년 기준)에 불과했던 시대였다. 졸업을 어렵게 한다고는 했지만, 대학 ‘간판’이 중요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큰 혜택이 됐다.
문을 넓힌 대학에서 이들은 ‘세력’을 확보했다. “세대형성 시기에 민주화를 실현하려는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그 가치를 내면화”(오세제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하면서 활동영역을 넘어 연결되는 세대가 됐다. 또한 공장에 취업(‘학출’)하거나 도시빈민과의 연대를 통해 이후 노동계 및 시민사회와의 연대도 가능해졌다.
문화계도 마찬가지. 공연·영화계에선 ‘1987’ ‘택시운전사’ ‘광화문연가’ 등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계속 다뤄지고 있다. 60~70년대는 소외되고, 90년대 역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외엔 두드러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이 시대가 ‘과잉대표 됐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이재명 정부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이 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20년 ‘86세대의 문화권력과 그 양가성에 대하여’를 통해 “80년대 대학 총학생회 살림살이와 문화제를 담당했던 사회부장과 문화부장 출신들이 현재 문화예술 분야에서 파워 엘리트 그룹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통상적으로 한 세대가 기성세대, 기득권 세대로 진입하면 그들 청년문화 시절의 상징권력이 약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86세대의 문화적 상징권력은 여전히 강하게 드러난다”고 썼다.
제2차 베이비부머의 첫 주자였던 83학번들이 대학 4학년이었던 1986년부터는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이 시작됐다. 1986~1989년 3년간 실질 성장률은 평균 12%에 달했고, 1980년 5%였던 실업률은 1988~1997년 10년간 2%대를 유지했다. 대기업들의 상·하반기 대규모 정기공채가 제도화되면서 대입이 그랬듯 취업의 문턱이 낮아졌다.

자산 마련에서도 비슷했다. 오제세 교수는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벤처 붐과 함께 ‘바이 코리아’라 불리는 주식시장의 대세 상승기가 있었고, 90년대 신도시 건설이라는 부동산 활황기도 있었다. 이때 386세대의 일부는 집을 장만하여 중산층으로 편입되거나 극히 일부는 신자산계층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386세대 세대효과의 특징 연구-세대효과의 조건적 표출을 중심으로’)고 설명했다.
민주화운동 복권으로 대거 정계 입성
IT와 벤처 붐을 통해 김범수·김택진 등 자수성가형 기업인이, 영상미디어의 발달은 박진영·방시혁 등의 거대 레이블을 일군 문화예술인이 탄생했다. 이후 세대에선 드물게 발견되는 유형이다.
이후 90년대 학번들은 정치권에 활발한 진출은 적었지만, 86세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코어 세력은 86세대와 90년대 초반 학번이 꼽힌다.
이들의 결합에 대해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통상 학생운동을 80년대로만 연결짓는데, 학생운동의 동원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는 90년대 초중반”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80년대는 학생운동이 개화했지만, 여전히 대학생 숫자가 적었다. 반면 90년대부터는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어서면서 시위 참여자가 커졌고 과거처럼 과도한 탄압이 없었기에 마치 MT 가듯 학생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90년대 학번 중후반까지도 이런 자기장에 속한 세대”라고 말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들을 ‘후기 386세대 네트워크’라고 명명한다. 시대적 흐름을 탄 덕분에 ‘자산가’로 올라선 이들이 이제는 사회·경제적 기득권을 통해 동맹을 맺었다는 것이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중도 사퇴를 불러왔던 초·중 무상급식은 제2차 베이비부머들이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에 걸쳐 있을 때였다. 대입에서 기존보다 ‘공부 외 요소’를 대폭 수용하게 된 입학사정관제는 노무현 정부 때 기획돼 이후 정부를 거치며 완전히 정착됐다. 성적 외에 인성·리더십 등 ‘전인적 요소’를 함께 본다는 취지로 도입했으나, 2019년 조국 사태에서 확인됐듯 실제로는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이 자녀를 명문대-전문직으로 끌어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결과가 된 측면이 있다.
강정석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사무국장은 “조민은 ‘무시험 전형’을 통해 입학한 케이스인데 고려대 입학, 부산대 의전원 입학은 논문 참여 및 제1저자 등재 등 보통 입시생이라면 갖지 못할 ‘스펙’”이라며 “소위 ‘86세대’가 자신들이 획득한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아래 자녀세대에 안정적으로 ‘세습’해주는 계급 유지 전략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계급 유지 전략으로서의 교육의 문제:불평등의 구조화와 86세대’)라고 지적했다.
2017년엔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도입됐다. MRI·초음파 급여화와 중증·고액질환 위주 보장성 강화가 골자였는데, 소득 하위층과 65세 이상 노년층이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50대에 접어든 제2차 베이비부머가 노년기에 접어든 부모 부양 부담이 대폭 절감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들이 51~61세에 걸쳐진 올해 3월엔 20년 가까이 논의가 멈춰있던 국민연금 개혁이 추진됐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올리되, 소득대체율도 40%에서 43%로 인상했다. ‘더 내지만, 더 받는’ 방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만 20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20대의 83.0%, 30대의 82.8%가 보험료율 인상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하는 등 20·30대는 “젊은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겼다”며 반발했지만, 되돌리진 못했다.
1기 신도시, IT 붐, 바이 코리아 등 ‘수혜’
여권이 추진하는 정년 5년 연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연장 시 5년 후 60~64세 고령 근로자 고용을 위한 비용은 30조2000억원으로 추산됐다. 25~29세 청년층 9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정년 연장 논의는 필요하지만, 가장 많이 피해를 볼 청년층들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된 채 정년 연장이 제도적으로 가닥을 잡는 것을 보자니, 국민연금 개악에 정치권이 한 마음으로 야합했던 악몽이 재현되는 것 같다”며 “양대 노총이 원하는 정년 연장의 혜택은 극히 일부만 누리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임명묵 작가는 “제2차 베이비부머는 사회 주류이자, 기득권인데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를 명(明)과 암(暗)으로 나누는 세계관에 갇힌 채, 산업화 세대가 물려준 유산의 수혜자라는 점도 부정하고, 한편으론 자신의 기득권은 악착같이 지키려 한다”며 “자신들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청년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시대를 넘어 100년을 준비하는 교육개혁](https://img.newspim.com/news/2025/10/30/251030211438104_w.jpg)




 AI 시대를 넘어 100년을 준비하는 교육개혁](https://img.newspim.com/news/2025/11/14/251114152525778_w.jpg)
![‘불수능’에도 수도권 의대 커트라인 285점 [AI 프리즘*대학생 취준생 뉴스]](https://newsimg.sedaily.com/2025/11/15/2H0GOXD9LO_1.jpg)
![軍, 역대급 물갈이 인사 “중장 진급자 20명” [AI 프리즘*신입 직장인 뉴스]](https://newsimg.sedaily.com/2025/11/15/2H0GQ0S3VN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