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EU·영·일본·우크라 등 금지 지정
웨스팅하우스만 수주 활동하도록 합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협정으로 인해 향후 북미, 유럽, 일본, 영국, 우크라이나 등으로의 시장 진출이 막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이 체코 원전을 무리하게 수주하려다 유럽 등 주요 시장을 ‘포기’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계속돼왔는데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과 한전은 올해 초 웨스팅하우스와 향후 시장 진출이 불가능한 국가를 지정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알려진 계약 내용에 따르면 세 기관은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EU) 가입국,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에서 향후 웨스팅하우스만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또 한수원·한전이 원준 수주 활동을 할 수 없는 국가 명단도 첨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상 국가는 동남아시아(필리핀·베트남),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 북아프리카(모로코·이집트), 남미(브라질·아르헨티나), 요르단, 터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이날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폴란드 철수’를 공식 인정해 업계에 알려진 이 같은 계약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황 사장은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폴란드 원전 사업 철수 계획을 묻는 질의에 “일단 철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2022년부터 폴란드 국영전력공사(PGE)와 민영 발전사인 제팍(ZE PAK)과 함께 한국형 원전(APR1400) 2~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즈음부터 프로젝트 투자가 동결됐다는 내용의 현지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수원의 폴란드 진출 중단 가능성이 줄곧 제기돼왔으나 황 사장이 ‘철수’를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황 사장은 철수 이유에 대해 “폴란드 새 정부가 들어오면서 원래 투 트랙으로 진행하던 정부 사업과 국영기업 사업이 있었는데 국영기업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철수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수원은 지난해 말 스웨덴 원전 수주전 참여를 철회한 데 이어 올해 2월 슬로베니아의 신규원전(JEK2) 건설 사업 입찰에 불참한다고 통보했다. 3월에도 네덜란드의 신규 원전 수주전에서 발을 뺐다. 지난 1월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 타결 이후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에 이어 폴란드에서까지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7월 한수원은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1000㎿급 원전 2기를 건설하는 계약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입찰에서 탈락한 웨스팅하우스의 이의 제기로 최종 계약이 보류돼왔다. 웨스팅하우스는 이와 별도로 한수원·한전과 지식재산권 분쟁도 벌여왔다.
웨스팅하우스는 올해 초 한수원·한전과 협정을 맺은 뒤 이의 제기를 철회하고 지식재산권 분쟁도 마무리했다. 이때의 협정으로 한국 측이 수출 원전 1기당 8억2500만달러(약 1조1400억원)를 지급하기로 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 ‘굴욕’ 계약 논란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