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여행 가서도 수리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럼요. 필요하면 당연히 하지요.”
지난해 11월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같은 숙소에 오래 머무는 유유자적한 여행을 선호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목표는 오로지 기차를 타는 것. 철도만을 이용해 전국을 돌아서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다. 매일 바쁘게 동네를 탐색하고 이틀 안에 짐을 챙겨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는 숨 가쁜 여정에도 나는 수리 도구를 챙겨 갔다.
여행 동안 나의 외피(外皮)가 되어준 중고 바람막이는 소매 부분이 늘어난 상태였다. 여행 사흘째, 문구점에서 납작한 고무줄을 사다가 소매를 줄였다. 실을 뜯고, 손목 둘레에 맞게 고무줄을 자른 다음 옷소매 안에 넣어 꿰맸다. 덕분에 짐을 들거나 팔을 움직일 때마다 소매가 거추장스럽게 흘러내리는 불편이 싹 사라졌다.
타이베이의 숙소에서도 수리할 건수가 있었다. 경첩이 오래된 문과 옷장은 사용할 때마다 오컬트 영화에 나올 법한 소음을 냈는데, 머무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걸어서 이동할 때마다 철물점을 찾아 헤맸다. 방청 윤활제인 WD-40을 구하기 위해서였다(WD-40은 인화성 물질이라 비행기에 실을 수 없다). 하루에 2만보를 걸으면서도 이방인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고, 부실한 문과 옷장을 내버려둔 채 다음 숙소로 떠났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흥미롭게 구경하던 재봉틀 전문점에 스핀들유*가 있었고, 비슷한 효과가 있는 자전거 체인 오일도 상점에서 구하기 쉽다는 것을. WD-40에 대한 집착 때문에 다른 방도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교훈은 남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언제나 생각의 창을 열어두어야 한다.
며칠 전, 강릉의 한 호텔에서도 작은 문제가 있었다. 샤워기 고정장치의 나사가 헐거워져 물을 틀 때마다 샤워기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물이 엉뚱한 데로 튀는 것은 기본이고, 반쯤 풀린 나사가 당장이라도 뽑혀나올 듯했다. 이런 일로 사람을 부르기는 번거롭고, 마침 가방에 휴대용 드라이버가 있어 직접 나사를 조이고 불편 없이 샤워를 마쳤다.
바깥에서의 수리는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공간과 기물을 함께 이용하는 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나무 덱이나 지하철 계단에서 튀어나온 나사를 발견하면 그것을 밟고 미끄러질 사람을 생각하며 즉시 수리한다. 가방에 약간의 무게를 더해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고칠 수 있는 것을 발견해 고치는 일은 수리하는 사람의 본능이자 기쁨이다.
일상에서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순간에도 수리를 예비하는 이유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눈앞에 있는데, 수리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스핀들유(spindle oil) : ‘미싱 오일’이라 부른다. 재봉틀 외에도 자물쇠, 바퀴, 자전거 체인 등에 윤활제로 쓰인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