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패러독스

2025-08-24

이재명 대통령이 관세 협상 세부 논의 등이 이뤄질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어제 미국으로 향했다. 대통령의 방미 길에는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기업 총수가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관세 협상의 합의를 이끌어낸 조선업 협력 등 세부 내용 논의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건넬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할 예정인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 규모도 이들에게 달렸다.

기업인과 원팀을 강조하며 이 대통령은 성공적인 회담을 위한 작전회의까지 했다. 지난 19일 순방에 동행하는 기업인과 간담회를 열고 "이번에 동행하는 기업들은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K-기업인의 필수 덕목인 ‘국가 충실의 의무’를 저버릴 수 없지만, 이쯤 되면 나랏일에 앞장서는 한국의 기업인을 ‘공무원’이라고 칭해도 무방치 않을 정도다.

간담회가 열린 이 날 국회에서는 주요 경제단체와 업종별 대표자가 모여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반대 결의 대회를 열었다.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법안 수정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 호소는 기업과 원팀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그쳤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미국 순방길에 오른 어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기업이 필요하지만 기업을 때린다.’ 이 기묘한 엇박자에 “(한국은) 지독한 패러독스(역설)의 땅”이란 말이 오버랩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질문에 낙관적 전망을 밝히며 한 말이다. 김 실장은 “복수노조법과 중대재해법 때도 이것 이상의 우려가 있었는데 법이 통과된 뒤에는 새로운 우리 사회만의 룰이 생겨서 성숙한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냐”며 “우리 내부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면도 많은 지독한 패러독스의 땅”이라고 했다.

지독한 패러독스의 땅이란 말이 맞춤인 듯, 경영계가 기업 옥죄기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각종 정책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명분과 당위가 없어서가 아니다. 일방통행식의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주장과 정책이 정당성을 퇴색시켜서다.

대통령과 정부는 상법과 노동법 개정안, ‘산재와의 전쟁’이 후진국형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김 실장은 노란봉투법이 “원·하청 노사가 상생하고 기업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진짜 성장을 위한 법”이라고 했다. 이상적인 방향으로 굴러간다면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생과 생산성 향상에 노란봉투법이 효과적인지 의문이 인다.

파업은 요구를 관철하는 손쉬운 수단이 될 것이다. 사용자 범위가 넓어지며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도 원청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면서 협력사가 수천여 개에 이르는 대기업은 자칫하면 1년 내내 교섭만 하다 날이 샐 수 있다. 하청업체가 죄다 원청 대기업을 물고 늘어지면 법적 분쟁에 기업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상황도 피할 수 없다.

우려대로 노란봉투법으로 생산 현장이 파업과 쟁의, 교섭의 늪에 빠져들면 상생은 고사하고 생산성 향상은 요원해진다. 게다가 기업이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조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면 기업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원청업체는 파업이 잦은 협력 혹은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국내 사업을 줄이며 해외 사업 비중을 확대할 수 있다.

물론 생산 시설이 국내에 있고 정부와 국민을 의식해야 하는 만큼 기업의 엑소더스(탈출)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늘어나는 부담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노란봉투법이 정말로 ‘해외 이전 촉진법’ 혹은 ‘산업 공동화법’이 될 수 있다. 자동화 속도를 높여 일자리 감소도 가속화할 수 있다.

노사와 원·하청 상생을 위한 노란봉투법은 파업의 비용을 사회로 전가하는 역설도 낳을 것이다.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려 기업이 제품 가격을 올리거나, 파업에 따른 생산과 공기 지연 등으로 비용이 늘면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된다.

노란봉투법이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빚어질 좌충우돌은 어떤 패러독스일까. 역설적일 만큼 완벽한 상생 모델일까, 의도와 달리 기업과 노동자를 모두 옥죄는 역설을 낳을까. 하긴 “문제가 생기면 법을 개정하면 된다”는 데 이런 걱정 자체가 쓸데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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