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헌절은 위기 뒤 맞는 첫 생일”···헌정 위기 극복한 ‘시민의 힘’ 기를 방안 마련해야

2025-07-16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8분. 모든 한국인이 그랬듯이 헌법학자들도 텔레비전 등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 헌법학자들은 직감적으로 ‘헌법의 시간’이 이후 도래할 것임을 알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 요건과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은 도저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적’이며 ‘내란 행위’라고 곧바로 생각했다. 시민들은 국회 앞을 지키기 위해 서울 여의도로 향했고 헌법학자들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빗발치는 기자들의 전화에 하나하나 답하며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알리는 게 주어진 책무라 여겼다.

이런 책무를 느낀 헌법학자들은 ‘계엄의 밤’이 지난 뒤 ‘헌정 회복을 위한 헌법학자 회의(헌법학자회의)’를 만들었다. 100여명의 헌법 연구자로 구성된 헌법학자회의는 지난해 12월25일 결성 이후 여러 차례 토론, 좌담회 등을 열었고 이를 통해 통해 마련한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끊임없이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적이고, 윤 전 대통령은 파면돼야 한다고 밝혔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지난 6월3일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헌법학자회의는 이달 말 마무리 모임을 거쳐 해산을 할 계획이다. 이제 ‘헌정은 완전히 회복된 것일까.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헌법학자회의 공동대표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전광석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헌환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표상임실행위원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헌법학자들은 “올해 제헌절은 헌정 위기를 극복한 뒤 맞는 첫 생일로, 헌정 회복은 이제 시작”이라며 “헌정 위기를 극복한 시민의 힘을 더욱 공고히 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헌법학자회의에는 100여명의 헌법 연구자가 참여했다. 윤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헌정이 중단되는 위기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긴급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가장 중점을 쏟은 일은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이 실질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비상계엄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헌법 위반의 정도도 심각해 파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마련해 헌재에 제출하는 것이었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여러 차례 토론과 좌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모았고 이를 지난 2월 헌재에 전달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을 때, 권한대행이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때, 탄핵심판 청구 사유에서 국회 측이 형법상 내란죄를 제외할 때 등 헌법에 기초한, 권위있는 해석이 필요하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발표했다. 김종철 교수는 “헌법의 주인인 국민이 판단하기 위한 정보를 주고, 숙의를 통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게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헌법학자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헌법학계에 또 다시 ‘흑역사’가 펼쳐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과거 위헌적 계엄 선포가 된 이후, 쿠데타가 성공하면 헌법학자들이 동원돼서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었다. 헌법학계에도 ‘비상사태’가 도래했던 것”이라며 “12·3 불법계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것은 권위주의 정부와 싸우지 못했던 개인적 부채감도 있다”고 말했다.

헌법학자들은 한국 사회가 이제 ‘헌정 회복’을 위해 첫발은 뗐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취약한 기반은 그대로인데 ‘탄핵 결정’이 났다고 헌정 회복이 됐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은 물론이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까지 ‘헌법을 지킬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전반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헌법학자회의는 활동을 마치기로 했다. 김선택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는 정파를 떠나서 ‘민주공화정’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는 일이었다”며 “헌정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이런 비상사태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분간 표면적으로는 활동하지 않더라도 늘 잠재된 힘으로 헌법학계에 남아있는 ‘휴화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학자들은 올해 제헌절은 ‘남다른 의미’로 기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는 ‘헌법을 부정한’ 대통령에 의해서 생겨났지만, 비상계엄을 수습한 것은 ‘헌법을 체화한’ 시민들이었다. 전 교수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헌법의 힘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며 “과거 국가에 의해서 ‘주어진’ 헌법과 달리 시민의 힘으로 만든 1987년 헌법 체제가 무너지니 참을 수 없었던 시민들이 헌법을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법적 대화 과정’을 통해 헌법이 ‘형성’되는 과정이었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라는 것도, 광장에 나온 시민들, 목소리를 낸 시민들이 형성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학자들은 12·3 불법계엄 선포부터 이날까지 있었던 ‘위헌’적 조치 중 기억해야 할 것으로 ‘불법계엄 포고령’과 ‘비상입법기구 설립 시도’ 등을 꼽았다. 김선택 교수는 포고령의 위헌성을 다시 강조하며 “포고령이 만들고자 했던 나라는 ‘대한민국 헌법’이 상상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달한 ‘비상입법기구’ 설립 시도를 짚었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하지 않은 국회 해산권을 실현하며, ‘독재’로 나아가려했다”는 것이다. 김종철 교수는 “한덕수 전 총리는 헌법재판관의 임명을 보류하며 대통령 탄핵 절차를 방해했다”며 “내란에 동조하며 헌정 질서를 어지럽힌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마음에 새겼으면 좋을 헌법 조문으로는 헌법 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공통으로 꼽았다. 전 교수는 여기에 헌법 제7조의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조문을 더했다. 전 교수는 “국민에 봉사해야 할 ‘공무원’인 국회의원들은 일부만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에는 집단적으로 불참했다”며 “국회의원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비상사태가 끝나고 헌정이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많은 위험 요소가 한국사회에 남아있다. 특히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여전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윤 어게인’을 외치고 있다. 전 교수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 문제로 극단주의 세력이 나타나는 것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며 “건전한 다수가 확장을 막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선택 교수도 “극단적 소수파 세력이 커졌을 때, 민주헌정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정비할지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다만 헌법학자들은 ‘위헌 정당 해산’ 등 법적인 조치를 동원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 교수는 “위헌 정당 해산은 지극히 예외적인 수단이어야 한다”며 “일회적 사건, 정당 내 개인이 아닌 정당 전체가 ‘지속적’으로 위헌을 할 때로 위헌 정당 해산을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선택 교수도 “위헌 정당 해산 요건에 맞는 충분한 사실관계와 증거가 확보돼야 가능할 것”이라며 “국민이 선거를 통해 심판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헌법학자들은 시민들의 ‘헌법적 토대’를 단단하게 할 방법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택 교수는 “제헌절의 이름을 바꾸든, 12월3일을 새로 지정하든 ‘헌법의 날’을 만들고, 비상계엄 사태로 윤 전 대통령이 파괴하려 한 ‘한계선’을 꾸준히 상기할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곳곳에 헌법 교육 센터를 만들고, 시민 교육의 일환으로 헌법 교육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직자가 ‘헌법’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김선택 교수는 “이번에 군의 소극적 저항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지만, 앞으로도 군이 국민의 군대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하도록 군인 헌법교육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국가인권위의 ‘윤석열 방어권’ 안건은 ‘헌법 준수 의무’를 감시해야할 기관에 고유 성격에 어긋나는 인사를 임명한 게 이유”라며 “인권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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