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가 한국 대선 승리”했다는 로라 루머
3일 또 백악관 방문해 밴스 부통령과 독대
지난번 방문 땐 NSC 고위직 줄줄이 낙마 시켜
비평가들, 레빗 백악관 대변인 비판
“한국 관련 대답 못 한 레빗, 백악관 난맥상 보여줘”

미국 백악관이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 내놓은 첫 메시지에 이례적으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것을 놓고 로라 루머를 위시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인플루언서들의 입김이 의심되는 가운데, 루머가 지난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J D 밴스 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CNN은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루머가 백악관 업무용 건물인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밴스 부통령과 일대일 비공개 회동을 했다고 4일 보도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언론에 확인된 루머의 마지막 백악관 방문은 지난 4월 초였다. 루머가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밴스 부통령 등과 회동을 한 바로 다음 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관계자 4명이 해고되고, 며칠 후 2명이 추가로 잘렸다. 그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아 루머가 집요하게 공격했던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까지 결국 교체됐다.
이 때문에 루머가 지난 3일 백악관 방문에서 밴스 부통령과 또 무슨 대화를 나눴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MSNBC는 “대화의 내용에도 관심이 쏠리지만, 무엇보다 루머에게 이렇게 높은 수준의 접근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다. 루머는 언론인 혹은 트럼프 대통령 자문위원을 자칭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런 직책이 없어서 언론인 출입증조차 갖고 있지 않다.
로이터통신이 백악관의 이례적인 한국 대선 관련 메시지를 보도하면서, 루머를 비롯한 마가 인플루언서들의 소셜미디어 게시글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루머는 이 대통령의 승리가 확실시된 3일 새벽 엑스에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장악하고 대선에서 승리했다”며 “끔찍한 일”이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마가 인플루언서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도 “한국은 망했다”란 글을 올렸고,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마이크 플린은 지난주 엑스에 “한국 대선의 부정선거는 중국 공산당에만 이로울 것”이란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
루머와 플린, 배넌은 모두 마가의 세계관 안에서 친분을 쌓아온 관계다. 플린은 루머가 2020년 플로리다 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트럼프 행정부 인사 중 가장 먼저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인물이고, 배넌은 루머를 “정보전의 전사”라고 치켜올린 바 있다.

루머가 백악관에 미치는 영향력을 집중 조명한 미국 매체 와이어드의 지난 2일 보도에 따르면 루머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소통창구가 돼주는 것은 ‘인간 프린터’로 불리는 나탈리 하프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최측근 중 한 명인 그의 자리는 대통령 집무실 문 바로 앞에 마련돼 있다.
하프는 트럼프 대통령을 칭찬하는 기사, 극우 인플루언서들의 소셜미디어 게시글 등 대통령의 관심을 끌 만한 온갖 디지털 자료들을 프린트해서 쉴새 없이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와이어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참모들이 루머에서 하프로, 하프에서 대통령으로 흘러가는 의심스러운 정보를 차단할 방법을 찾지 못해 좌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비평가들은 이 같은 백악관의 난맥상을 가장 잘 보여준 장면 중 하나가 한국 대선 결과에 관한 질문을 받은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행동이었다고 지적했다. 레빗 대변인은 브리핑 도중 백악관 입장을 “찾아주겠다”며 서류 더미를 뒤지다가 멋쩍은 듯 웃고는 “없다”고 답했다. 변호사이자 언론인인 론 필립코브스키는 엑스에 이 영상을 공유하며 “그는 트럼프를 찬양하거나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레빗 대변인의 입지는 루머가 NSC 인사들을 대거 숙청한 후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레빗 대변인은 지난달 말 “이란에 대한 모든 신규 제재 활동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NSC나 재무부가 내려야 할 지시를 백악관 대변인이 내리고, 이 지시가 거꾸로 NSC와 재무·국무부의 고위 관리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왈츠 보좌관이 해임된 후 NSC 직원 100명 이상이 직위에서 해임되거나 소속 기관으로 복귀했다”면서 “이후 NSC 기능은 엉망이 됐고, 백악관 대변인실이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선 실세’가 활개를 치면서 백악관의 정상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을 방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뿐 아니라 마가 인플루언서들이 지근거리에서 전파하는 잘못된 정보까지 바로잡아야 하는 부담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