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의 시복 100주년을 맞아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함께 모셔진 유해함과 유해 증명서를 공개했다.
이 유해 증명서에는 1925년 12월 16일이라는 날짜가 표기 있다. 따라서 같은 해 7월 5일에 거행된 시복식 이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발급된 것이다.

이 사료는 '한국천주교사료목록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사됐는데, 오랜 기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보관해 오다가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전한 보존을 바라는 수녀회의 뜻에 따라 2025년 2월 19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기증됐다.
가톨릭 교회에는 순교자들이 보여 준 신앙의 모범을 본받고 순교자 공경을 북돋우는 차원에서 유해를 분배하는 오래된 전통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유해를 함부로 분배하거나 매매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해 왔다.
주교회의는 "펜으로 작성된 유해 증명서의 중간 부분이 흐릿하여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유해함에 모셔진 유해가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머리카락과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 일부'인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의 세 명의 선교사는 박해가 한창이던 1836~1837년 조선에 각각 입국한 프랑스인 사제들로서, 한국인 성직자 양성과 복음 전파를 위해 애쓰던 중 체포돼 1839년 9월 21일 한강 새남터에서 함께 순교했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의 진쟈상 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 서품된 김대건 신부는 외국인 성직자의 입국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1846년 6월 백령도 해역 순위도에서 체포됐고, 옥중에서도 서한을 통해 신자들을 격려하는 등 헌신적으로 사목했으나 사제 수품 1년여 만인 1846년 9월 16일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이 네 명의 사제는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됐으며, 이후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울 여의도에서 시성됐다.

유해가 모셔진 유해함과 유해 증명서가 하나의 액자 형태로 함께 보존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례가 흔치 않기에, 이 사료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교황청은 '성인과 복자의 몸이나 그 몸의 주요 일부, 또는 화장하고 난 유골 전체가 '중요한 유해'로 인정되며, 유해는 적절한 유해함에 봉인하여 보관해야 하고, 안전하고 거룩하며 경배가 용이한 장소에 모셔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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