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우리나라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여파로 인해 ‘케미포비아(Chemophobia·화학물질 공포증)’ 현상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그때, 정점을 찍는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다. ‘다크 워터스’.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이 개발한 화학물질인 과불화옥탄산(PFOA)의 위험성을 파헤친 한 변호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사건은, 대형 로펌에서 화학기업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롭 빌럿에게 한 농장 주인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 농장은 롭이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롭은 듀폰에 미국 환경보호국(EPA) 조사 자료를 공유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것을 농장 주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농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롭은 이상 행동을 보이는 젖소를 목격하게 된다. 젖소들의 떼죽음, 하얗게 색이 바랜 돌멩이, 그리고 여전히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굴뚝 연기.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롭을 비추는 장면 위로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Take me home)’이 흐른다.
생활·산업에 두루 쓰는 PFAS
프라이팬 코팅제가 대표적
면역결핍·기형아 등 부작용
환경기준 지금보다 강화해야

‘천국과 같은 웨스트 버지니아’. 내가 방문연구원으로 일했던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있었던 곳이었기에,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화면에 비친 주인공의 얼굴에서 공감한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분해 안 되는 포에버 케미칼
과불화화합물(PFAS)이란 게 있다. 합성 유기불소 화합물군의 총칭이다. 4000~1만2000종이 알려져 있으며, PFOA 또한 여기에 속한다. 자연환경 내에서 분해가 되지 않아 잔류성 유기 오염 물질로 분류된다. 한번 환경에 배출되면 수천 년 동안 거의 분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포에버 케미칼(Forever Chemical)’이란 별명도 붙었다. 생체 축적성 또한 매우 높다. 최초의 PFAS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 (PTFE)은 우연히 발견된 화학물질의 대표적인 예다.
1938년 듀폰에 입사한 플런켓 박사는 냉매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화학물질을 찾던 중 우연히 특이한 코팅 하나를 발견했다. 실린더에 넣어 영하 80도 냉동고에 보관해 둔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 가스가 실린더 벽에서 중합반응을 일으켜 PTFE로 변한 것이다. 그는 이 물질이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물과 기름을 튕겨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활용처를 찾는 데 실패했다. PTFE는 듀폰 창고에 보관되었다. 그러던 중,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미국 주도로 개시되었고, 과학자들은 핵분열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공정에서 용기의 부식을 방지할 수 있는 코팅제가 필요했다. PTFE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듀폰은 테플론이라는 상표명을 달아 PTFE를 우수한 식품포장재로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고,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플라스틱 제조 공장에서 그 생산을 시작했다. 프랑스 공학자인 마크 그레고아르도 1954년 테플론 코팅 조리기구를 생산하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테팔이 그것이다. 그 후로, 뛰어난 방수·방오 효과를 가진 PFAS는 카펫·의류·종이컵·세정제·생리대·화장품·페인트·접착재·가구와 같은 소비자 제품에 널리 사용되었다.
음식이 눌러 붙지 않는 테플론 프라이팬은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어, PFAS를 상징하는 제품이 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산업계에서는 열과 물에 강한 성질을 이용해 코팅제·포장재·반도체 세정제·산업용 냉매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그 첫 생산이 시작된 1947년부터 관련 화학물질의 단계적인 생산 중단이 선언된 2000년까지 PFAS는 우리 삶 자체였다. 물·공기·토양과 같은 자연 환경은 물론, 지구에 생존하는 거의 모든 생물체에서 PFAS가 검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국제암연구소(IARC)는 2023년 11월 PFOA를 그룹 1 발암 물질로 분류했다. 내분비계 교란, 고콜레스테롤, 불임, 기형아 출산, 신경독성, 면역결핍과의 밀접한 연관성 또한 제시되었다. 기후변화협약 탈퇴, 재생에너지 예산 삭감 등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환경규제 철폐를 강조하는 미국 정부마저 PFAS의 환경 기준치를 70 ppt에서 4 ppt로 대폭 강화하며 규제 강화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 내 PFAS의 인체 위해성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기준치 초과한 국내 수돗물
인체 위해성이 우려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환경부가 지난 5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2024년 사이 전국 정수장 수돗물에서 검출된 PFAS 농도가 미국 기준치를 초과한 것은 총 251회였으며, 이 기간 동안 국내 중고생의 혈액 내 PFOA는 약 7.4% 증가했다. 한편, 국내 기준치는 여전히 70 ppt로 설정되어 있다. 기준치보다 낮은 것이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증가하는 생체 및 환경 내 PFAS 분포를 고려할 때, 정부는 PFAS의 환경 기준치를 강화해야만 한다. 또한, 식품 포장재를 비롯한 소비자 제품에 대한 PFAS의 사용 중단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면서 대체품에 대한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미국은 3M이 주도적으로 대체품을 개발하고 있다. 원천 소재의 개발이 국제 시장을 점유하는 초석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산·학·연 협력을 통한 PFAS 대체 소재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부분은 더 있다. 국민이 케미포비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그것이며, 기업이 생산한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검증된 데이터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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