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백 년 동안의 고독

2025-06-19

오래전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다가 포기한 이유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법의 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의 흐름 때문이었다. 흙을 먹는 아이 레베카는 특히 기괴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이유로 가브리엘 가브리아 마르께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 환상적이지만, 현실처럼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나는 집 마당에 크지 않은 텃밭 상자 몇 개를 가지고 있다. 농약을 쓰지 않는 것에 더해 토착미생물로 텃밭 작물을 키울 요량으로 동네 산에서 부엽토를 긁어 퇴비 대신 넣는다. 규모가 작기에 가능한 시도다. 산에 가서 흙을 만지고 흙냄새를 맡는 동안 심신이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 피톤치드 효과다. 산속의 흙, 부엽토는 낙엽 등 식물이 오랜 시간 동안 분해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유익한 미생물 백화점이다. 그래서 식품 발효와 음식의 풍미를 높이는 데 쓰이는 등 쓰임새가 많다.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어린 레배카가 밥을 먹지 않고 흙만 먹어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흙을 먹는 아이란 설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브리엘 가브리아 마르께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다시 읽었다.

1967년 발표된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고립된 마을 마꼰도에 정착한 부엔디아 가문의 7대, 백 년 동안에 걸쳐 일어난 비극적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다. 주인공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촌인 우르슬라와 결혼한다. 그 후 살던 마을을 떠나 마꼰도에 정착한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는 부엔디아 가족과 마꼰도의 탄생과 몰락, 부엔디아 자손들의 근친상간과 그 공포, 끝없이 반복되는 전쟁이 기이한 사건들과 함께 펼쳐진다. 고립된 마을 마꼰도에도 차츰 문명이 들어온다. 집시 멜키아데스가 자석과 망원경, 카메라와 같은 물건들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집시의 물건은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마을 사람들도 관심을 보인다.

이후 마꼰도와 마을 사람들은 외부 정치의 영향도 받게 된다. 콜롬비아 정부가 파견한 조정관 아폴리나르 모스코테는 마콘도 소재 모든 주택 외벽을 푸른색으로 칠할 것을 명한다. 이런 과정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정치적 신념을 갖게 되고, 보수파인 장인과 반대편에서 자유파의 일원이 되어 봉기를 일으킨다. 전쟁은 오래 계속된다.

소설 속 고립된 마을 마꼰도의 설정과 내전 상황은 마르케스의 조국 콜롬비아의 상황과 비슷하다. 콜롬비아는 실제로 1960년대에 시작한 내전이 52년 동안 지속된 나라이다. 세계역사상 가장 긴 내전이었다. 그 내전으로 약 22만 명이 숨지고 몇백만의 전쟁 난민을 낳았다. 반군은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1980년 우리나라의 광주항쟁과도 닿아있다. 고립된 광주에서 국가폭력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콜롬비아 내전과 광주항쟁은 모두 동시대에 일어난 비극인데, 가브리엘 마르께스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내전과 내전을 살아낸 사람들을 담았고 노벨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의 한강은 광주항쟁에서의 국가폭력과 시민들의 항쟁을 <소년이 온다>로 보여주었고 노벨상을 수상했다. 위대한 문학은, 위대한 작가는 시대의 아픔, 시대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진리를 확인하며, 한강의 작품과 함께 이 소설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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