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번홀 파세이브 퍼트 후에 세리머니는 무의식적으로 터져나왔어요. 누구를 지목한 것도 아니었고, 마치 다들 조용히 하라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31일 경기도 광주 강남300CC(파70·6863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동아회원권그룹 오픈(총상금 7억원)에서 1년 10개월의 침묵을 깨고, 시즌 첫승 및 통산 13승을 거둔 베테랑 박상현(42)은 최종라운드(2언더파 68타)에서 두 차례 환상적인 플레이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3라운드까지 2위와 5타차로 앞선채로 최종라운드를 맞아 ‘무조건 우승’이라는 주위의 기대가 오히려 큰 부담이 됐다는 그는 초반 티샷이 흔들리는 불안정한 플레이 속에서도 분위기를 돌리는 멋진 파 세이브와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최종합계 21언더파 259타를 기록, 이날 9언더파 61타를 치며 맹렬히 따라붙은 이태훈(19언더파 261타)을 2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2023년 10월 제네시스 오픈 우승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거둔 값진 우승이다.
8번홀(파4) 파세이브는 이날 박상현 우승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장면이었다. 이때까지 버디 2개, 보기 1개로 1타를 줄이는데 그치며 경쟁자들에게 쫓기고 있던 그는 8번홀 티샷을 페어웨이 왼쪽 언덕위 러프에 떨구는 실수를 범했고, 두 번째 샷도 너무 깊게 들어가 불과 10여m 앞 러프에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다. 3번 만에 그린에 올려 남은 파 퍼트는 무려 11m. 여기서 이날 두 번째 보기를 범한다면 흐름을 놓칠 수도 있는 중요한 장면에서 박상현은 긴 파 퍼트를 넣고 갤러리의 폭발적인 함성을 끌어냈다.
멋진 파세이브 이후 박상현은 그린 주변 갤러리를 검지로 일일이 지명하는 세리머니를 펼쳤고, 공을 홀에서 빼낸 뒤에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이후 9번홀(파5) 버디 이후 10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하며 또 한 번 위기에 빠졌으나 12번홀(파3)에서는 그린 밖 프린지에서 퍼터로 약 6m 버디를 잡아내고 또 한 번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박상현은 공식 우승인터뷰에서 그 두 차례 장면에 대해 “저는 항상 퍼트를 하면서 들어갈 것 같다, 그런 상상을 해요. 슬로모션처럼 라인을 타고 들어가는 그림을요”라며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고, 이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쇼맨십이 뛰어난 박상현은 이어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그렇잖아요. TV 시청자들은 2시간 넘게 지켜보다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기도 했을 거고, 중간에 보신 분들도 있을 텐데 ‘이게 무슨 순간인데 저런 세리머니를 하지’라며 궁금해 하시도록 세리머니를 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요”라며 웃어보였다.
“5타 차 선두이고, 박상현 프로는 당연히 우승하겠지 하는 기대가 제겐 큰 부담이었다”는 그는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풀지 않았고 18번홀까지도 잘 몰랐다”며 우승 확정순간까지 신중을 거듭했음을 밝혔다.
박상현은 올해 전반기에는 한 차례도 톱10에 들지 못했을 정도로 부진했다. 지난해 SK 텔레콤 오픈에서 최경주에게 연장전 끝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에는 후반기에 골프존 도레이 오픈(공동 8위) 한 번 밖에 톱10에 오르지 못했을 만큼 부진이 계속됐다.
“그 때 이후 계속 결과가 나빴던게 사실이지만 멘털이 무너졌다기 보다, 샷이 안 좋았었다. 샷에 변화를 줘봤지만 계속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그는 “하위권에서만 맴돈 올해 전반기를 끝낸 뒤 한 달 반 휴식기 동안 과감하게, 정말 한 번도 골프채를 잡지 않고 푹 쉬었다. 다른 운동도 하지 않았고, 그후 다시 클럽을 잡고 최근 샷이 좋아지면서 이처럼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박상현은 우승상금 1억 4000만원을 더해 통산상금을 56억 5735만원으로 늘려 사상 첫 60억원 돌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제네시스 포인트 순위도 77위에서 24위로 뛰어 하반기 맹활약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통산상금에는 사실 연연해 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곧 60억원을 돌파할 것 같고, 언젠가는 70억원도 돌파할 것”이라고 담담히 밝힌 그는 “앞으로 큰 목표는 무조건 20승(국내+해외)을 채워 KPGA투어 영구시드를 받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현은 일본투어 2승을 더해 통산 15승을 기록, KPGA투어 영구시드까지 5승을 남기고 있다.
프로 데뷔 이후 15차례 우승중 최근 2승을 만 40세 넘어 거두며 롱런 선수의 모범이 되고 있는 그는 “저는 다른 운동 안하고, 그리 예민하지도 않고, 먹고 싶은 음식 다 먹고, 술도 마신다”면서 “하지만 골프에는 누구보다 진심이다. 대회 나가기 전에 항상 설레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찍 깨고, 긴장감을 안고 플레이 한다. 골프에 관한한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편이라서 롱런하는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대한 롱런비결 조언을 묻자 그는 “저 처럼 하라고 하면 큰일 납니다”라고 말해 미디어진의 폭소를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