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 처분을 받은 감독이 비밀리에 촬영한 이 작품은, 과거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다섯 명이 자신들을 고문한 남자와 우연히 마주치며 벌어지는 복수극이다. 하지만 파나히 감독은 복수가 아닌 용서, 증오가 아닌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권이 무너질 때 폭력은 끝날 것인가, 아니면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인가?”
파나히 감독은 단순히 현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에게 영화 만들기는 정치적 저항이 아닌 인권의 실천이다. 칸 영화제 수상 소감에서 그는 “아무도 우리에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3년 전 이란에서 시작된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은 히잡 강제 착용에 저항하며 폭발했다. 여성들은 거리에서 구타당하고 의도적으로 실명당했지만, 다음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스카프를 불태우고 히잡을 벗어던진 그들의 저항은 이란 역사를 운동 전후로 나누는 분수령이 됐다.
2024년 9월 이란을 방문했다. 테헤란 거리에서 길을 물었던 젊은 여성은 히잡을 쓰지 않았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를 드러낸 채 당당히 걸어다녔다. “이렇게 다녀도 괜찮아요?”라는 내 질문에 그는 “상관없어요”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아닌 확신이 담겨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여성들은 입을 모았다. “이미 혁명은 시작되었어요. 바로 우리 힘으로 얻은 거예요.” 그리고 2025년 현재, 이란의 거리는 더욱 변화하고 있다. 이란의 일상을 보여주는 SNS에선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란 여성들이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할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젊은이들은 테헤란 거리에서 음악 공연에 맞춰 춤을 춘다.
이란 정부는 2023년 더 강력한 히잡법을 통과시켰지만 실행을 유보했다. 또 다른 대규모 저항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직접 단속 대신 감시 카메라와 벌금으로 전환했지만, 여성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심지어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도 히잡을 벗은 여성들이 ‘용감한 이들’로 여겨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변화가 2025년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이라는 처참한 전쟁을 겪은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폭격과 공포 속에서도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벗고 거리를 걸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억압이라는 이중의 위협 앞에서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의 참상은 이란 시민사회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자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가 아닌가? 파나히 감독의 영화가 복수가 아닌 용서를 말하듯, 이란 여성들의 저항도 폭력이 아닌 일상의 실천이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시민들의 힘은 어떤 탄압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란 거리의 변화, 히잡을 벗어던진 여성들, 그리고 비밀리에 영화를 만드는 감독. 이 모든 것이 말해준다.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혁은 결코 ‘그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저항이며,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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