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만 10명 넘어"…가방 속 시신으로 발견된 ‘유명 회계사’의 두 얼굴 [오늘의 그날]

2025-11-03

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1990년 11월 4일 오전 11시께 서울 반포대교 남단 150m 지점. 한 낚시꾼이 한강 위를 떠내려가던 여행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가로 1m, 세로 70㎝ 크기의 그 가방을 열어본 순간,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안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웅크린 채 숨져 있었다. 비닐봉지가 씌워진 얼굴은 피멍이 들어 있었고, 뒷머리는 둔기에 맞은 듯 찢어져 있었다.

피해자의 신원은 곧 밝혀졌다. 세무 상담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린 공인회계사 임길수씨(당시 50세).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35년이 지난 현재까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 양복 차림의 시신…정체는 유명 공인회계사=임씨는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출연해 세무 상담을 진행하던 유명 회계사였다. 국회의원 선거에 3번이나 출마하며 명성과 재력을 겸비해 온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그는 1990년 10월 28일 아내에게 “친구를 만나겠다”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선 뒤 사라졌다.

다음 날 그가 출연하기로 한 방송 녹화에도 나타나지 않자 제작진은 아내에게 연락을 취했다. 결국 아내는 서초경찰서에 가출 신고를 했고, 6일 뒤 그는 한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뇌출혈. 쇠뭉치나 각목으로 머리를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양복 차림에 맨발이었고, 반항 흔적이 없던 점으로 미뤄 경찰은 면식범의 계획적 범행이라 판단했다.

◇ 충격적인 두 얼굴의 삶…내연녀만 10명 넘어=탐문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임씨의 사생활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서울대 출신 교사 아내와 2남 2녀를 둔 평범한 집안의 가장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여성 김씨와 동거하며 1남 3녀를 두고 있었다. 이 외에도 최소 10명 이상의 여성과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부부 사이가 악화했고, 급기야 아내는 국세청에 임씨의 탈세 사실까지 고발하기도 했다. 또 임씨는 공인회계사로 10여개의 대기업과 거래하고 자문하며 돈을 끌어모았으나, 잇따른 총선 낙마와 여자들을 만나며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혼과 탈세 고발, 연이은 선거 낙마로 명예와 재산을 잃어가던 그는 죽기 전 약 1억5000만원 남짓한 재산만 남은 상태였다.

◇ 수많은 용의자들…단서는 여전히 오리무중=경찰은 임 씨의 운전기사와 비서부터 조사했다. 운전기사는 “경제적 도움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을 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했고, 비서 역시 범행 시점에 대한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업무상 원한, 내연관계, 치정살인 가능성까지 모두 조사했지만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그의 차량이 발견됐을 때도 실마리는 없었다. 트렁크 안에서 모래와 흙, 머리카락이 발견됐지만 국과수 감정 결과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 “돈, 사랑, 분노”…끝없이 등장한 내연녀들=1991년 봄, 경찰은 임씨에게 세무 상담을 받았던 구씨와 그의 7살 연하 내연남을 새로운 용의자로 지목했다. 두 사람은 간통죄로 구속된 상태였는데, 경찰이 구씨의 소지품을 검사하다 임씨가 생전 써준 영수증을 발견한 것이다.

구씨는 1989년 초 세금 상담을 하다 임씨와 알게 된 후 가깝게 지내왔다. 구씨는 임씨에게 업무 대가로 500만원을 건넸으나 일이 처리되지 않자 갈등을 빚었다.

경찰은 구씨가 부유한 전 남편들로부터 거액의 위자료를 받아내고 평소 재물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내연남이 사건 당시 얼굴에 상처를 입었던 점, 그리고 임씨와 같은 기종의 차량을 몰았다는 주변인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같은 해 6월, 임씨의 또 다른 내연녀인 사업가 이씨가 다시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씨는 폭력배를 고용해 청부폭력을 의뢰한 전력이 있었고, “관계를 폭로하겠다”며 임씨에게 7000만원을 뜯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결정적 단서 없이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 35년째 미제…범인은 여전히 어딘가에=서초경찰서 수사팀은 사건 초기부터 수차례 용의자를 특정했지만, 매번 증거 부족으로 수사는 중단됐다.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다. ‘유명 공인 회계사 피살 사건’은 여전히 한국 대표 미제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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