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98〉AI 시대, 기업은 무엇으로 인간적 신뢰를 얻는가

2025-11-05

최근 아마존 본사에서 인공지능(AI) 도입을 이유로 1만4000명 규모의 해고가 단행됐다.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다. 사람이 수행하던 일의 존재 이유가 시스템 안에서 사라진 것이다. 본사에서 업무 하나가 삭제되면, 그 일에 연결된 전 세계 로컬 오피스의 수많은 일도 함께 의미를 잃는다. 마치 중앙 서버가 특정 코드를 지우면 각국의 단말기가 동시에 멈추는 것처럼. AI에 의한 대체는 결국 인간의 역할이 아니라, 인간이 일에 부여하던 의미를 지워 나가고 있다.

그동안 기업은 일을 성과를 내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효율, 속도, 자동화가 곧 진보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제 AI가 업무를 수행하는 시대에 기존의 일에 대한 기업과 대중이 당연하게 믿어왔던 업에 대한 가정의 해체는 앞으로 인간은 무엇을 의미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까지 닿는다. 일은 개인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었다. 그 관계가 사라질 때 인간은 더 이상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서기 때문이다.

링크드인에는 이런 현실을 체감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2개의 인력 공급 회사를 운영하는 한 인력중개업자는 기업들이 자사 내 로보틱스를 더 많이 도입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해 왔으며 사업주로서 수익을 늘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국 점점 더 많은 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할수록 일자리를 잃은 소비자들의 지출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사용자는 아마존의 결정을 세 문장으로 요약했다. AI를 도입하고, 남는 인력을 줄이고, 다가올 침체에 대비하고 있다. 이 의견들은 오늘날 기업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예견되는 미래를 함축한다.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기업의 세계가 수학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효율적일수록 인간의 존재 이유는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 아마존은 또 다른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오픈AI가 아마존과 380억달러 규모의 장기 계약을 맺어 아마존웹서비스(AWS) 인프라를 구매하기로 한 것이다. 오픈AI는 앞으로 수년간 아마존의 클라우드 위에서 자사 모델을 학습시키고, 전 세계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이는 단순한 기술 계약이 아니라 AI가 인간의 업무를 삭제하는 동시에, AI 산업의 인프라 확장이 폭발적으로 진행됨을 의미한다. 하나의 기업이 사람을 줄이는 동안, 다른 한 기업은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훈련시키기 위한 서버를 쌓는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삭제하는 속도만큼, 세상은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고, 더 많은 GPU를 구매하며, 더 많은 프롬프트를 학습시킨다.

결국 우리는 역설적인 장면 앞에 서 있다. 일이 사라질수록 컴퓨팅은 늘어나고 있다. AI는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동시에 인간의 의미를 더 멀리 밀어낸다. 이제 효율의 시대가 아니라, 의미 분리의 시대다.

따라서 인간다운 기업, 인간다운 업무를 지워낸 조직은 이제 새로운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기업과 직원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감각을 확인하고 있는가. 이번 아마존 사례는 기업 내부의 변화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AI가 기업의 업무 구조를 바꾸면, 소비자와 구직자가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예전엔 사람들은 제품의 품질, 브랜드의 신뢰, 연봉과 복지를 보고 기업을 판단했다. 이제는 '이 회사는 직원과 고객, 즉 인간에게 어떤 경험적 가치를 주는가?' '이 조직은 인간이 일할 이유를 존중하는가?'와 같은 의미를 향한 질문에 답변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관련해 기업 리더들은 다음의 항목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첫째, 관찰하고 있는가. 기술의 효율을 기대하기 전에, 당신이 담당하는 일의 맥락과 고객의 삶, 동료의 언어 속에서 아직 삭제되지 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가. 둘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가. 새로운 AI 솔루션의 도입이 현장의 인간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고려하고 있는가. 셋째, 복원을 예비하고 있는가. 일은 다시,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세계에 참여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기업 활동에 참여하는 인간에게 다시 참여의 감각을 가져다 주는 기회를 설계해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 기업은 '얼마나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적인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업만이 인간을 잃지 않는다. 그들이 직원이건 고객이건.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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