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홈스라는 여성이 있다. 혈액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의료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 주장한 그는 2014년 기준 10조원 이상 가치로 평가받은 벤처기업 ‘테라노스’ 최고경영자(CEO)였다.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릴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후 ‘에디슨’ 기술이 크게 과장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기업 가치는 0원으로 추락했고 그는 사기죄로 수감됐다. 금발의 매력적 외모와 집안, 학력, 언변 등 다른 장점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를 세상에 알린 그 기술, 그 혁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나머지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새벽배송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심야(0~5시) 배송을 금지하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찬성 의견도 있지만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새벽배송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맞벌이 부부 등 꼭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는 의견, 이 노동을 원하는 노동자들도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요약하면 새벽배송이 ‘필요하다’와 ‘필요 없다’의 공방이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빠진 것이 있다. 애초에 혁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벽배송 서비스가 탄생한 것은 단지 새벽에 배송을 한다는 아이디어 덕분이 아니다. 아이디어로는 뭔들 못하겠는가? 필요한 물건을 생각만 해도 10분 내에 배송하는 ‘10분배송’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아예 3D 프린터로 각 가정에서 필요한 식자재를 출력해 쓰면 더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여도 실행할 수 없다면, 불가능을 가능케 할 혁신이 없다면 현실이 될 수 없다.
새벽배송은 혁신이 없는데도 현실이 됐다. 새벽배송은 심야에 물류와 배송을 하는 서비스이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토대를 만들어놓지도 않고 서비스를 밀어붙였다. 의료인, 경찰 및 소방 공무원, 제조업 종사자 등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교대제 없이 연속 심야근무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노동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왔기 때문이다. 새벽배송 기업들은 물류는 일용직, 배송은 개인사업자 형태로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직원에게 하듯 세세하게 지시, 감독했다. 그 결과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다쳐왔다.
혁신이 아니라 편법에 기댄 새벽배송은 현실이 될 자격이 없었다. 투자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마땅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새벽배송을 정 하겠다면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고용하고, 건강에 무리가 안 가는 교대제를 운영해야 한다. 개인사업자 인력을 꼭 쓰고 싶다면 연속 심야노동이 아닌 범위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무리한 노동을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했다가는 기업이 망할 지경이라면, 안타깝지만 새벽배송은 중단되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장점이 있었더라도 의미가 없다. 허상 위에 존재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새벽배송의 대표주자 쿠팡이 처음 이름을 알린 계기가 10여년 전 ‘로켓배송’ 사원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일이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뻔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은 책임을 더 준엄하게 물을 수 있는 한국 사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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