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말, 타임스오브인디아는 테슬라가 핵심 부품인 반도체 공급망을 중국 중심에서 인도 등으로 확장 및 다변화하기 위해 인도의 타타일렉트로닉스(Tata Electronics), CG세미(CG Semi), 마이크론(Micron) 등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는 보도를 했다. 테슬라는 그동안 상하이 기가팩토리를 중심으로 글로벌 전기차 생산의 핵심 공급망을 구축해 왔고, 중국산 배터리와 반도체 소재에 깊은 의존성을 보여왔기에 이 같은 소식은 기존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벗어나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고자 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전략적 논의 차원을 넘어서,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최근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 흐름의 상징적 사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근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최대 245%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전면 재정립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강화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중국산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법적, 제도적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글로벌 공급망이 명확히 '탈 중국'이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공급망 재편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기술 기업이 미래에 마주할 전략적 리스크 관리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생산비용 상승, 품질 관리 문제, 새로운 파트너의 신뢰성 확보 등 현실적 도전 앞에서, 애플은 베트남과 인도로의 생산 이전을 가속화하고 있고, 인텔과 마이크론도 아시아 내 공급망 다변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공급망 다변화를 준비하지 않은 기업은 급변하는 글로벌 질서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이제 기술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첫째, 현재 공급망 내 중국 의존도는 어느 정도이며, 장기적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둘째, 공급망 다변화 과정에서 비용과 품질 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되어 있는가? 셋째,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를 검증하고 관리할 내부 역량과 프로세스는 충분한가?
관련해 국가별 지정학적 리스크 평가는 정치적 안정성과 미국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공급망 대상 국가를 분류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도는 친미적 태도와 지정학적 리더십 확대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베트남은 미국과의 협력 강도에 대해 보다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 전력, 에너지, 통신 인프라의 자립도를 사이버 공격, 내전 등의 위기 발생 시 대응력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단순 국가 리스크 스코어가 아닌, 자사 산업과 직결된 항목별 위기 리스트를 구축해야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공급망 내 자본 흐름 점검 또한 중요하다. 기존 파트너 기업의 주주 구성과 최대 투자자 출처를 분석하고, 특히 지정학적 중립성 여부, 미국 내 승인 경험 등 비재무적 신뢰 요인을 새로운 평가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단가가 낮더라도 중국 국영 자본이 관여된 업체라면 장기적으로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기술은 계속 진보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려면, 생존을 위한 전략적 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을 통해 러시아에 종전을 압박하고 있고, 인도와의 협력을 통해 친중 성향의 파키스탄을 견제하고 있다. 사우디와는 원유 생산 조정을 통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약하고 있으며, 필리핀과는 남중국해 미군 주둔을 재개했다. 베트남은 러시아산 수호기 대신 미국산 F-16 전투기 도입을 결정했다. 이 일련의 흐름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질서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중국은 디플레이션과 고율 관세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내외부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으며, 공급망 지배력 또한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술 기업에게 공급망 다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그리고 지금의 질서 재편은 기술이 아니라 체제 선택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공급망 전략은 더 이상 물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가 되었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현대 사회를 '의사소통 시스템들의 총합'으로 보았다. 경제, 정치, 법, 기술은 각기 다른 언어와 기준을 가진 하위 시스템이며, 조직은 그 속에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리스크를 선택하고 분배한다. 공급망 전략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공급망은 단지 물자를 전달하는 경로가 아니라, 어떤 리스크는 감내하고 어떤 리스크는 피할지를 결정하는 커뮤니케이션 구조다. 지금과 같은 질서 재편기에는 리스크를 제거하는 전략보다, 리스크를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명확히 선택하는 일이 기업 생존의 관건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