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추격·추락·추월의 대전환 시대, '기술사업화 모멘트'

2025-05-08

기술 발전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경로를 보여주는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 교수는 기술 진보를 통한 새로운 성장자본 축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20세기 미국 성장의 80%가 기술 진보 결과이며, 실리콘밸리를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근거로 꼽기도 했다.

한국은 지금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총요소생산성(TFP)이 선진국 대비 매우 빠르게 하락(미국 감소폭 0.0, 일본 -0.6, 한국 -2.9)하고 있으며, 2030년대 이후에도 지속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를 위한 성장자본이 제대로 축적되지 않는 것은 국가혁신시스템 탈동조화로 혁신 주체 간 연계가 취약하고, 공공기술 시장 적합성 부족과 기업 혁신 위험 수용력 부족 등이 어우러져 생산성과 혁신기업의 창출을 크게 감소시킨 데 있다.

네이처도 지난해 7월 한국 특집호를 통해 학계에서 산업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미흡을 지적했고, 비슷한 시기 한국은행은 신생 혁신기업 시장진입 감소와 혁신기업가 육성 여건 미흡을 성장동력 저하 요인으로 제시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처방은 지식영역과 시장영역을 연결하는 기술사업화 구간을 국가 최대 도전과제로 설정해 그동안 구조적·제도적 문제로 인해 과학기술 성과가 경제 성과로 전환되지 못한 시대적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연구개발(R&D) 중심 정책에 가려져 온 기술사업화가 곧 혁신성장이라는 인식 제고가 출발점이다. 향후 10여년 간 다양한 혁신기술이 빠르게 상용화하면서 대규모 신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므로 상용화 속도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을 성장으로 연결하는 기술사업화 가속화를 위해선 혁신 주체들이 혁신자원과 핵심역량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협력 경로와 인센티브 체계를 설계하고, 기술사업화 생태계를 만들어 죽음의 계곡을 함께 넘어가는 전환적 사고와 실행 의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 첫 번째로 현재 부처별 분절·파편화된 기술사업화 지원정책과 법제도, 기능 및 사업을 총괄 조정하고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도 기술이전·사업화 분야에서 부처 간 통합·조정 체계가 미흡한 까닭에 범부처 통합 정책 거버넌스 구축을 지적한 바 있다.

우선 범부처 기술사업화 민관협의체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에 기술사업화 특별위원회 및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총괄 사무기구를 정부 조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부 R&D 혁신과 사업화 촉진을 위해 분산된 조직을 총괄할 목적으로 발족한 영국 연구·혁신기구와 그 산하기관으로 이관된 전담 조직 '영국혁신청(Innovate UK)'과 같은 구조도 대안적 모델로 보인다.

둘째, 민간 과소 투자로 발생하는 시장실패 교정 정도를 넘어 투자 효율성이 떨어지는 혁신시스템을 개조하는 차원에서 기술사업화 예산을 현행 대비 2~3배 대폭 확충해야 한다.

과학기술을 가치로 전환하는 기술사업화 영역은 정부의 중장기 중점 투자 부문이지만, 정부 R&D 예산의 4~6% 수준에 불과해 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임계규모 이상 확충을 위해 민관이 함께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며, 공공연구기관도 적정 비율을 자체 예산으로 확보하고 정부나 민간과 매칭해 수요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이 긴요하다.

효율적 재정지원을 위해 다양한 분야별 후속 R&D와 실증 사업화에 대응하면서 기업 책무성도 강화될 수 있도록 출연 외 융자·보증·대출, 투자 등 지원 방식 다변화도 요구된다. 부처별 산재된 단기 소규모 위주 지원사업 구조도 대형성과 창출 중심으로 과감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술이전 중심에서 기술창업사업화로 혁신의 중심축이 전환된 상황에서 공공기술 시장성 보완과 민간 적극 투자 견인을 위한 공공 기술이전조직(TLO)의 질적 향상 및 대안적 모델이 필요하다.

선도국 대비 지원조직의 질적 수준이 최하위(비상경제장관회의, 2023년 1월)이고, 기술사업화 성과도 기대치에 못 미쳐 개선 목소리가 높다. 내부 조직 한계와 전문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대형성과 창출을 위해 공공기술사업화 종합전문회사 체제를 도입하고, 유망기술발굴·고도화, 사업화·창업, 성장지원까지 전 주기를 책임지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사업화 종합전문회사를 중심으로 공공 R&D 역량과 민간 혁신역량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생태계로 확장하는 최적 경로를 만듦으로써 딥테크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창출되고, 국가 전략자산으로 성장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이러한 지속가능 창업·사업화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사업화 종합전문회사가 앵커 역할을 하도록 규모의 적정화와 함께 기술 스케일업 예산과 기업 스케일업을 위한 정책금융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장기적인 육성책이 필요하다.

특히 딥테크 적합 장기투자자본의 대규모 조성과 지분 인수를 위한 세컨더리펀드 확충으로 후속 투자를 활성화해야 무겁고 오래 걸리는 딥테크 창업생태계가 건강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공공연구기관의 기술 창업 비율(4.1%)이 매우 과소해 혁신기업 시장진입 감소와 선도국 대비 테크기업 수의 절대 부족으로 이어졌던 문제를 해소하고, 대형성과가 창출되는 성장 엔진이 갖춰질 것으로 보인다.

넷째, 실증사업과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지자체 및 수요 대기업과 함께 대규모 실증 인프라 확충에 나서야 한다.

기술사업화 영역은 혁신 주체 간 함께 '이어 달리는' 구간이다. 더욱이 블랙박스화돼 있는 실증구간은 기업과 공동작업(Co-creation)이 핵심이다. 기술성숙도(TRL) 4~6 수준 기술을 사업화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이전할 경우 사업화 성공률이 가장 높으므로 여기에 연구계와 산업계의 재원 투입 및 협력적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2023년 기준 정부 R&D 예산 가운데 실증예산 비율은 2.8%에 불과했다. 이에 산업계는 지난해 기술패권경쟁 대응을 위한 정부 건의를 통해 실증을 R&D 영역으로 정하고 실증 투자 비중 확대와 분야별 실증플랫폼 등 인프라 확충 필요성을 요구했다. 이처럼 정부는 실증예산 과부족이 기술사업화 구조적 한계상황을 고착시킨다는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범부처를 연결해 실증사업 및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실증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렵고 리스크가 큰 기술사업화에 합당한 올바른 인센티브와 기술사업화 친화적 평가 체계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기술사업화에 걸림돌이 되는 출연(연)의 예산시스템(PBS)을 개편해 완결형 R&D를 책임지는 구조로의 전환과 기술사업화 특성을 반영한 가치 중심 질적 성과평가체계 개편은 빠를수록 좋다. 이를 통해 출연(연)은 딥테크 혁신 원천이자 '딥테크 창업의 공장'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사업화 역량이 필요한 딥테크 스타트업과 지역 대·중견기업을 연결하는 산업화 플랫폼을 구축해 고부가가치 공급망을 창출하는 성장 엔진 역할을 해야 한다.

세수 효과는 없고 기술이전 의욕을 꺾어 버린 직무발명 보상 세제도 종전과 같이 비과세로 전환하고, 연구실에 갇힌 기술을 끌어내 죽음의 계곡을 넘고 있는 기업가들이 모태 기관 지원을 받는데 어려움과 외로움이 없도록 인식개선과 함께 기관의 법정 지원 의무를 이행하는 조치도 마련돼야 한다.

민간 협력을 유인하는 외부기술취득과 협력 R&D에 대한 세제 혜택을 자체 개발보다 우대하고, 기술이전 과세특례 대상을 대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 반도체 등 현재 주력산업은 1990년대 G7사업에 대기업들이 적극 참여해 민관협력으로 일군 성과물이다. 정부가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총력지원체계를 천명한 만큼 이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는 일괄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는 가치의 공동창조자로서 위험을 감수해 왔으며, 혁신의 최초 투자자로서 혁신의 새로운 경로를 열어 국부를 창출해 왔다. 국부를 창출한 아이폰이 스마트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인터넷, GPS, 음성인식시스템 등 혁신의 결과물 때문이며, 이는 정부가 지원한 공공기술사업화 결실이다.

국가 간 추락, 추격, 추월이 교차하는 혼돈의 대전환 시대, 과학기술 사업화 선도국만이 국가 백년대계를 떠받칠 중심축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범부처 국가 기술사업화 비전 선포가 글로벌 혁신 선두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누릴 재도약의 전환점이기를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최치호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 chchoi@kstholdings.co.kr

〈필자〉 최치호 대표는 2014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술사업단장과 서울홍릉강소특구단장을 역임했다. 2017~2020년에는 한국연구소 기술이전협회(KARIT) 회장을 지내며 공공기술 이전 및 사업화 전문가로 평가된다. 2010~2017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재산전문위원회 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평가전문위원회 위원과 정책조정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관련 정책 강화에도 기여했다. 2023년 4월부터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3월부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글로벌 R&D 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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