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이 포래여, 아주 맛있어.” 노순택의 흑산

2025-11-08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사진가는 커다란 바가지를 끌며 파래와 미역, 물김을 따는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 굽은 허리로 물김을 바가지에 담는 할머니가 사진가의 눈에는 마치 거룩한 기도를 드리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이거이 포래여, 아주 맛있어. 근디 이 할매를 찍어가서 뭣한다요?”

바가지에 담기는 해산물이 늘어날수록 할머니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사진가는 할머니의 무거운 바가지를 들었다. 할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손에 흙 묻는다고 사진가를 말렸다. 전남 신안군 임자면 진리마을에 사는 1936년생 쥐띠 이판덕 할머니다. 9남매를 키워낸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해산물 바가지가 가벼워져도 할머니의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사진가에게 우리 집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란다.

“으응, 흑산도 사람들 야그로 책을 만든다고. 긍게 여그서 사진기를 매고 다니고 있그만.”

사진가의 이름은 노순택이다. ‘분단의 향기(2005)’, ‘얄읏한 공(2006)’, ‘붉은 틀(20070“, ’비상국가(2008)‘ 등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사진에 담으며 다큐멘터리 보도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사진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신안에서 찍은 작품들을 공개하고 있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운영하는 ‘공간숲풀’에서 열리고 있는 ‘흑산, 멀고 짙고’는 전남 신안의 섬 중에서도 가장 먼 곳에 있는 흑산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 이야기다. 관광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이 아닌 사람이 살기엔 척박해 보이거나 군사 방공시설처럼 느껴지는 질감의 섬 풍경에 대한 이상야릇한 감성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진에 첨부된 노순택의 작가 노트는 방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최연하 ‘공간숲풀’ 관장은 노순택의 ‘흑산, 멀고 짙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흑산도의 문화, 풍경, 사람과 동물 등 전면에 드러난 섬의 모습과 섬에 깃든 역사와 서사를 직조해, 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진으로 쓴 흑산도 대서사시’라 할만하다.”

섬이 ‘흑산(黑山)’이라는 불리게 된 이유는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이 돌아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모두 검게 보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흑산은 이름에 걸맞은 묵직한 역사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정약용 선생에 얽힌 이야기. 천주교를 탄압했던 신유박해로 인해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아우 정약용은 형님에게 위로의 말은 건네는데...

“저는 형님께서 가시는 흑산을 흑산이라고 부르지 않고 현산(玆山)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정약용의 차남 정약유가 흑산도를 찾았던 사연도 전해진다.

“막 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바다 가운데서 일어나니 하늘을 쪼개고 땅을 찢는 듯하였다. 뱃사공이 수저를 놓칠 정도였다. 나 또한 크게 놀라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물어보니 고래 울음소리라고 한다. 이때 고래 다섯 다리가 나와 노닐며 멀리서 거슬러 왔다. 그중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뿜는데, 그 형세가 마치 흰 무지개 같고, 높이는 백 길 남짓이었다. 처음 입에서 물을 뿜자 물기둥이 하늘 끝까지 떠받치는 것 같았다. 물을 뿜을 때 고개를 치켜 등마루를 솟구치니, 마치 물건을 운반하는 큰 배와 같았다. 수면에서 몸을 뒤집자 검은 거죽이 몹시 어두웠고 비린내가 확 끼쳐 왔다. 겁이 나서 가까이할 수 없었다.”

예로부터 흑산도의 검은 바다에는 큰 고래가 출몰했다. 사리마을에 사는 박남석(89) 씨 일가가 고래 고기를 먹지 않은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와 당숙 들이 바다에서 고기 잡던 중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힐 지경에 처했다. 납작 엎드린 채 죽음을 예감하던 찰나 커다란 고래가 나타나 배를 등에 얹고 섬으로 다가갔다. 구사일생이었다. 함양 박씨 집안 족보에는 당숙 박한비 씨의 아호가 사경(思鯨)이라 적혀 있다. 고래의 은혜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진가 노순택은 바다를 몰랐다. 그이에게는 흑산도나 영국이나 섬이라는 점에서 매한가지였다. 다 커서야 처음 바다를 만난 노순택은 그 넓음과 짠맛에 놀랐는데...

“오래전 흑산도에 함께 가자 약속했던 사내의 집을 찾았다. 흑산도에서도 가장 깊은 데 자리 잡은 마을 심리, 깊을 심(深) 마을 리(里), 우리말로는 ‘지피미’라 불리는 곳이었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육지의 병석에 계셨다. 홀로 빈집 한 구석을 쓸고 닦고, 침낭을 깔았다. 해 뜨기 전 사진기를 들고 나가 해 지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흑산도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바다에 집착했고, 어떤 날은 절벽에 집착했다. 어떤 날은 산 속을 헤맸다. 어떤 날은 사람에 붙들렸다.”

노순택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팔 폭의 병풍으로 만든 사진 작품을 특별히 선보인다. 병풍의 뒷면에는 그보다 앞서 전시를 진행했던 강홍구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안이 고향인 강홍구 작가도 흑산의 풍광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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