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명문 공연장인 카네기홀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섰다. 27일(현지시간) 열린 이 공연은 주최가 카네기홀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카네기홀은 서울시향과 함께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묶어 ‘오케스트라의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시리즈를 구성했다. 공연장은 카네기홀에서 가장 크고 성대한 공연장인 스턴홀. 서울시향은 한국 교향악단 최초로 카네기홀의 기획 무대에서 연주한 기록을 썼다.
명문 공연장 데뷔, 빛나는 성과
지휘자 태도 논쟁 보도는 유감
부드러운 리더십 살려나가야

서울시향의 80년 역사에서 중요한 도약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뒤에는 음악감독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있다. 2018년부터 6년 동안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었고 2024년 서울시향을 맡기 시작했던 츠베덴은 뉴욕에서 중요한 인사다. 그의 행보는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 문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서울시향에는 카네기홀의 정식 데뷔였지만, 츠베덴에게는 뉴욕 컴백의 의미가 있었다. 여기에서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동행이 한국인 아닌 세계인의 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점검해볼 수 있다.
츠베덴이 뉴욕필을 맡자마자 코로나 시대가 시작됐고, 지휘자의 계획은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뉴욕필에서 6년은 너무 짧다. 그는 피에르 불레즈와 더불어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음악감독으로 기록됐다. 츠베덴은 뉴욕필을 떠난 후 이번에 처음으로 뉴욕에 돌아갔고, 서울시향과 함께였다.
공연에 앞서 나왔던 츠베덴과 뉴욕타임스의 인터뷰를 보면 한국에서 애써 외면하려 했던 사실이 언급됐다. 바로 츠베덴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네덜란드 공영방송은 지난 5월 츠베덴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대해 독재적으로 지배한다는 내용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지휘자의 공포 분위기 때문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거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에서는 정식으로 보고된 사례가 없었고, 해외의 토픽 정도로 넘어갔다.
하지만 서울시향의 뉴욕 공연을 계기로 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다시 언급됐다. 특히 츠베덴이 여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점이 눈길을 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까다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이 홍콩필, 댈러스 심포니 같은 앙상블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비결이다.” 서울시향 또한 츠베덴이 성장 목표를 명확히 가지고 있는 오케스트라임이 틀림없다.
오케스트라를 강하게 조련하는 지휘자의 역사는 길다. 아르투르 토스카니니는 단원 한 명을 지목해 그야말로 마음에 들게 연주할 때까지 고함을 치며 험한 말을 퍼부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독재에 지친 단원 중 한 명은 연습 시간에 가슴에 총을 품고 들어가려 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20세기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가 걸어들어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긴장해서 연주를 더 잘했다. 츠베덴이 베토벤 교향곡 5번의 그 유명한 ‘빠바바밤’ 부분을 15번씩 반복시켰다는 것은 요즘은 잘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츠베덴과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를 공연했던 한 성악가가 “그는 16분 쉼표의 꼬리 하나하나까지 기억하는 지휘자”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그 성악가가 츠베덴과 함께 섰던 무대는 매우 정밀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스스로 완벽주의자인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가혹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악단의 실력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하지만 지난봄 츠베덴의 권위적 태도 논란이 불거졌던 것처럼 언젠가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이번 카네기홀의 공연 개요를 보면 츠베덴의 기획력이 돋보인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작곡가 정재일에게 신곡을 위촉해 뉴욕 청중에게 소개했고,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를 협연자로 내세웠다. 뉴욕에서 다수의 매체가 리뷰를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고 한다. 츠베덴과 서울시향은 다음 달 1일까지 오클라호마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내년에는 또 다른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츠베덴의 특기는 오케스트라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일이다. 그의 최신 목표가 풍부한 잠재력에 비해 세계적 주목을 덜 받은 서울시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행보에 대해 전 세계가 주목할 때, ‘독재적인 태도’의 변화를 눈여겨보리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카네기홀 데뷔로 상징되는 서울시향과 츠베덴의 힘찬 도약은 아름다운 장밋빛인 한편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동행이다.
김호정 음악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