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19송이를 샀다.
늦둥이 조카, 질풍노도 같은 사춘기에 징글징글 속을 썩이던 조카였다. 그런 조카가 ‘성년의 날’을 맞게 되었다.
성년의 날은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이다. 올해는 5월 19일이다. 만19세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고 유능한 인재 양성을 위한 바른 국가관과 가치관 정립을 심어주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우리나라는 1973년∽1974년까지는 4월 20일, 1975년부터는 5월 6일, 1984년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5월 셋째 월요일에 성년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중요한 네 가지 예식(관례, 혼례, 상례, 제례)을 관혼상제라 이른다. 관례는 정해진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치르는 의식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관례는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유교에서 말하는 어른이란 한 집안의 자식과 나라의 신하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할 사람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옛날에는 혼례보다 관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관례를 치렀다면 어른으로 인정을 해 주었다.
남자의 성년의식은 관례(冠禮)라고 했다. 댕기머리를 올려 상투를 하고 갓을 썼기 때문이다. 이 관례를 거쳐야만 아명 대신 진짜 이름과 자, 그리고 호를 가질 수 있고 결혼할 자격과 벼슬길에 오를 권리도 주어졌다. 여자의 성년의식은 땋았던 머리를 풀고 쪽을 찌었다. 비녀를 꼽았기 때문에 계례(筓禮)라고 했다.
관례를 치르는 나이는 보통 15세 이상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결혼을 일찍 치르는 조혼 풍습이 생겨났다. 10세 전후에 관례를 치르기도 했다. 나아가서는 10세 전후의 아이들에게 관례의식을 치르지 않고 초립을 씌우는 풍습도 생겼다. 그래서 ‘초립동’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관례의식은 세월을 거치면서 많은 변모를 겪었다. 1895년 11월 고종의 을미개혁 일환으로 상투 풍속을 없애고 머리를 짧게 깎도록 한 단발령 이후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마을별로 성년식이 있었지만, 그나마 산업화와 도시화에 밀려 전통적인 풍습은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직도 지역별로 향교에서 전통 성년례를 재현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성년식을 거행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성년식을 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남자는 13세가 되면 통곡의 벽에서 ‘바르미츠바’라는 성년식을 가진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에게 중요한 성지이다. 이스라엘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성년식을 위해 가족과 함께 통곡의 벽을 찾아오기도 한다. 통곡의 벽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3,500년 전에 일어난 민족의 역사와 아픔을 들려준다. 이스라엘의 성인식은 유대 민족 일원으로 성년이 된 것에 감사하고 애국심과 책임감을 배우는 경건한 행사이다.
이제 만19세 성년이 되면 족쇄와도 같았던 많은 보호 조치에서 벗어나게 된다. 의사결정도 훨씬 더 자유로워진다. 술과 담배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19금 영화도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병역판정검사는 특별한 연기 사유가 없으면 19세에 받는다. 결혼은 만 18세까지는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만19세가 되면 당사자끼리 결정할 수도 있다.
성년이 되어 누리는 자유에는 항상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에게 이 사회는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 진로 선택과 취업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그 산을 넘으면 사랑과 결혼, 출산과 양육이라는 더 거대한 산이 도사리고 있다. 이 거대한 산을 넘어갈 수 있는 지혜를 부모와 친척, 나아가서는 정부가 해 주어야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아가도록 희망을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젊은 세대의 취업난이다. 취업난은 인구절벽으로까지 가는 지름길과도 연관되어 있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오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성년이 되는 19세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조카에게 장미꽃 19송이에 편지까지 곁들인다. 혹시라도 꼰대 같은 노인네라고 험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장미꽃 향기가 좋다. 조카 녀석이 잘 자라 장미꽃 향기 나는 사람으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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