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쪽짜리’가 백서?···정신질환자 인권 대하는 복지부의 ‘얄팍한’ 태도

2025-11-18

보건복지부가 법에 따라 5년마다 발간해야 하는 ‘정신질환자 인권 백서’를 단 한 번도 만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매년 발간하는 ‘보건복지백서’에 관련 내용 10여쪽 넣은 것으로 대체했다고 해명했다.

1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은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복지증진 추진사항에 관한 백서를 발간하여 공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2017년 5월 법 개정 때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를 강화하고 복지 서비스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취지로 신설됐다.

복지부는 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까지 8년 동안 별도로 정신질환자 인권백서를 발간하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8년간 이 백서를 만들기 위해 별도 예산이 편성되거나 집행된 적이 없었다.

복지부는 매년 발간하는 보건복지백서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어 법적 의무를 충족했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백서는 한 해 동안 복지부가 추진한 정책과 성과 등을 담은 정기 간행물로 한 권 분량이 800~1000쪽에 이른다. 복지부는 이 가운데 ‘정신건강’을 다룬 10~20쪽 정도가 ‘백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백서 내 ‘정신건강’ 부분은 정신질환자 인권백서 발간 규정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 2014년 보건복지백서를 보면 ‘제3절 정신건강’의 ‘정신질환 인식개선 및 권익증진’ 항목 아래 정신질환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활동 등이 서술돼 있다. 지난해 발간된 보건복지백서에서도 같은 절, 같은 제목으로 유사한 내용이 반복됐다. 10년 전 발행된 내용을 조금 보완한 뒤 ‘인권 백서’라고 부르는 셈이다.

그나마 정신질환자 인권백서의 핵심이 되어야 할 ‘정신질환자 인권과 복지 증진’에 해당하는 부분은 매우 적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를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어, 중증정신질환자가 겪는 인권침해나 편견을 다루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보건복지백서에서 일반 국민 대상 정신건강 정책을 제외하고 ‘정신질환 인식개선’, ‘정신질환자 인권보호’ 등을 직접 다룬 부분은 2~3쪽에 불과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낮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2024년 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 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취업 등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내가 정신질환에 걸리면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라는 문항엔 응답자의 절반가량(50.7%)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다’라는 문항에는 10명 중 6명(64.6%)이 ‘그렇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법 조항에서 백서의 구체적인 형식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발간할지는 재량”이라며 “별도의 백서를 발간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해 보건복지백서로 대신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미화 의원은 “복지부가 법으로 정해진 정신질환자 인권 백서를 8년째 발간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정신질환자·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인프라와 인권정책이 정부 안에서 얼마나 후순위로 밀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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