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인민대 강연서 발언···“앞으로도 안 흔들려”
‘대미 관세 공동대응 위한 관계 개선 움직임’ 분석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가 최근 ‘중·일관계의 미래’를 주제로 한 대학 강연에서 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의 침략 등과 관련해 ‘깊은 후회와 반성’을 언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25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가나스기 대사는 지난 10일 인민대 중앙금융연구원이 주최한 대사 포럼에서 영어로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일본은 전쟁 중 행위에 대해 깊은 후회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여러 번 표현했다”고 말했다. 가나스기 대사는 그러면서 “이러한 입장은 역대 내각이 계승해 온 것으로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깊은 후회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는 무라야마 도이미치 전 일본 총리가 1995년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죄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가나스기 대사의 발언은 ‘무라야마 담화’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2014년 난징대학살 사죄가 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의미다. 주중대사의 ‘사과’ 언급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5월 말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한 ‘아시아의 미래 국제 포럼’에서 “참혹한 기억과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고 전쟁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이시바 총리의 과거사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며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은폐하는 모든 행위와 철저히 단절하고 평화 발전의 길을 견지해 아시아 이웃 국가와 국제사회로부터 실제 행동으로 신뢰를 얻기 바란다”고 논평했다.
가나스기 대사의 발언은 중국 관영매체들이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았지만 이시바 총리가 지난 23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선언하면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중국 외교가에서는 가나스기 대사의 발언을 두고 일본이 대미 관세 공동대응을 위해 본격적으로 한·중·일 관계개선에 나서려는 신호로 보고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과 일본이 지난해 말부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재개를 논의하는 등 관계개선에 나선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하반기 일본의 침략과 관련한 역사적 기념일이 줄줄이 있어 반일감정이 고조될 것을 우려한 바 있다.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건 기념일, 9월 3일 중국 항일전쟁 승전기념일, 9월 18일 만주사변 기념일, 12월 13일 난징대학살 기념일 등이다. 중국 정부는 9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톈안먼 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열 계획이다.
가나스기 대사는 일본 외무성에서 한국통으로 꼽히는 인물로 주중대사로서는 2023년 10월 부임했다. 대중 강경파 인사였던 다루미 히데오 전 대사 후임으로, 7년 만에 ‘비중국통’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대사로 부임한 것이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