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러시아 심리학자 레프 세묘노비치 비고츠키(Lev S. Vygotsky, 1896‒1934)는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인 오르샤(Orsha)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는 정식 학위는 법학이었지만, 이후 철학·문학·언어학·교육학 등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인간 발달에 대한 독자적 관점을 정립했다.
오늘날 ‘사회문화이론(Sociocultural Theory)’으로 알려진 그의 사고는, 인간의 학습과 발달을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과정’으로 본다는 점에서 기존 심리학과 뚜렷이 구분된다. 그의 대표 개념인 ‘근접발달지대(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는 학습자가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도움을 받으면 할 수 있는 영역을 뜻한다.
또 다른 핵심 개념인 ‘비계(scaffolding)’는 숙련된 사람이 단계적 도움을 제공해 학습자가 점차 독립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구조를 의미한다. 이 두 개념은 오늘날 교육학, 재활·복지, 특수교육, 상담·치료 프로그램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때 비고츠키의 이론은 치유농업(healing agriculture)과 숲 체험 활동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치유농업은 단순히 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활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 경험의 공유, 협동과 역할 분담을 통해 정서적 회복과 사회적 발달을 촉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치유농업의 효과는 ‘자연’만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비고츠키의 관점과 깊이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혼자서는 파종법을 이해하기 어려워도 농부나 보호자 및 치유농업사의 시범과 조언이 더해지면 금세 따라 하게 된다. 또 치매 노인은 혼자 텃밭을 관리할 때 혼란을 느끼지만, 또래와 함께 작업하거나 활동가, 치유농업사의 도움을 받으면 기억 회복과 자존감 유지에 도움이 된다.
고령 농부가 청년 자원봉사자에게 농기구 사용법과 재배 감각을 알려주는 과정 역시 기술 전수뿐 아니라 가치·생활 태도의 전이가 일어나는 사회적 학습 현장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비고츠키 이론을 치유농업에 적용해볼 때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이다.
물론 비고츠키가 생전 농업이나 치유 프로그램을 직접 연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핵심 명제. 즉, “인간의 발달은 사회적 기원에서 시작된다”라는 자연 기반 돌봄 활동이 왜 교육·복지·정신건강 분야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토대가 된다.
치유농업은 흙과 식물의 치유 효과에 더해, 세대 간·지역사회 간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발달의 장이 된다. 혼자 수행할 때는 단순한 농사일이지만, 함께할 때는 학습·돌봄·관계·기억이 동시에 작동하는 “심리사회적 플랫폼”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치유농업이 교육·돌봄·지역공동체 정책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비고츠키의 이론은 원래 아동 발달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관점을 이렇게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듯, 치유 또한 함께 있을 때 가능하다.” 농업은 산업이기 전에 관계를 잇는 문화이며, 치유농업은 그 사실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실천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경험이 자라는 농장, 데이비드 콜브의 경험학습모형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31.).
최연우. 2025. 스키너의 강화이론과 치유농업, 자연이 주는 보상의 심리학.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