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법칙(우리 모두는 배우이자 관객이다2)

2025-11-05

지난번 ‘우리 모두는 배우이자 관객이다’ 칼럼에서 우리는 배우이면서 관객이기에 어떻게 인식할지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이 인식론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제대로 철학책 원서를 읽은 적도 없고 여기에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이 부분에 관심이 많이 생깁니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마음과 몸이 하나가 아니고 다르며 마음에 해당하는 이성이 더 우월하며 몸에 해당하는 감정은 열등하다는 이분법의 시비(是非)적 관점입니다. 반면에 실존주의는 이 사상을 비판하면서 살아있는 개별적 인간의 주체적인 삶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삶에서 나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강조하는 실존적 사고보다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 옮고 그름, 즉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우선할 때가 많습니다.

이는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 국가에서 더 두드러지며, 어떠한 일을 하고 싶은지 아닌가 보다는 그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를 더 따지게 됩니다. 특히 자본주의적 경쟁심리를 강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나라는 더더욱 비교와 시시비비를 가리는 행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부터 해야 될 일과 해야 되지 않을 일들을 구분하였고, 조직인 정부와 기업 및 학교에서는 일을 처리하는 방법에 있어서 관료제와 함께 규정에 해당 사항을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한 판단을 중시합니다.

이는 6.25전쟁 후 잿더미가 된 상태에서 근면성실한 태도로 제조업을 육성하고 국가를 부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전란과 기근이 수시로 있었던 한반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해야만 되는 일을 하는 습성과 스스로에 대해 궁금해하기 보다 지금 남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비교하는 습관은 당연히 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였습니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섰고 AI혁명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태도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최진석 교수는 ‘삶의 실력, 장자’라는 책에서 이 시시비비를 넘어서 美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저는 이를 시비선악에 얽매여서 만든 것이 아닌 각 개별자들이 주체적으로 꿈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터넷이 2000년대에 대중화되면서 당시에 유행하였던 광고키워드에 ‘상상’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인터넷이란 새로운 가상의 공간이 출현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지금 우리 사회는 상상보다 ‘현실’을 훨씬 더 중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용시장의 양극화에 따른 의대입시 및 대기업 쏠림 현상은 이를 반영합니다. 부동산은 똘똘한 한 채라는 용어로 강남의 고가주택 쏠림 현상이 심화됩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비해서 지금 꿈이나 상상이라는 것은 현실에 비해서 상당히 사치스럽거나 가치가 없는 것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적 질서를 잘 받아들이면서 현실적으로 생존을 잘 하는 것이 안도감이지만, 행복은 꿈이나 상상에서 더 크게 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 40여 년 간 한국사회에 살아오면서 체화한 옮고 그름을 따지는 버릇이 저도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이것의 해악이 이제는 크다고 느끼기에 만으로 마흔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해보려고 합니다. 꿈이 이루어져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복해지는 것이 이제는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인식,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서 내가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배우의 역할을 원점에서 다시 주체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나 조현재라는 아바타의 눈에 맺힌 스크린을 보는 관객처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인식하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상상하며 살고 싶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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