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00만명의 얼굴

2025-11-04

“저희는 ‘노인 문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노인이 곧 문제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말이어서요.”

노인인권기본법 입법 대표 청원을 한 지은희 전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이 말했다. 빈곤, 고립, 자살, 디지털 격차 등 노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노인 문제’로 줄여 표현한 것이었는데, ‘아차’ 싶었다.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뭉뚱그려 생각한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

탑골공원에 오는 노인들을 만날 때 어떤 호칭을 쓸지 고민했다. 흔히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르신’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1998년 공모를 통해 ‘노인’의 대체 호칭으로 선정한 말이다. ‘노인’이라는 말이 사전적 의미 외에 ‘무기력하다’, ‘병약하다’ 등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지적에 따라 대체어로 바꿔 썼다고 한다. 인터뷰 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지난 3월 춘천남부노인복지관이 이용자 호칭 선호도 조사(496명 대상)를 했을 때, 당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칭은 ‘어르신’(92표)이나 ‘선생님’(71표)이 아니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건조한 호칭인 ‘회원님’(237표)이 표를 가장 많이 받았다. 이제는 이 조사처럼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불릴지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인구 1000만명’이란 표현도 고민스러웠다. 출생연도, 성별, 자산·소득 수준, 자녀 유무, 사회적 관계망, 거주지, 취미, 특기 등이 모두 다른 사람 1000만명이 ‘노인’이라는 한 단어로 묶인다. 기사에 나온 탑골공원 노인들의 이야기는 ‘수도권에 사는 75세 이상의 남성 노인’ 몇 명의 이야기, 그것도 그분들 삶의 한 단면을 전한 것뿐이다.

취재하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주변의 가까운 노인들의 삶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000만명은 추상적이지만 내가 아는 1명의 얼굴은 생생하다. 내가 노인이 되는 시점의 세상을 예측해보기도 했다. 노인인권기본법은 노인 각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노인정책을 포함해 사회정책 입안 단계부터 노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자기 삶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아는 노인들이, 내가 노인이 됐을 때, 그런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여러 우려가 쏟아졌다. 정부와 사회가 그 우려의 답을 찾는 여정에 노인인권기본법이 나침반이 돼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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