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디서 죽어지민 조키여!

2025-11-04

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논설위원

요즘 들어 103세 어머니가 입에 달고 하시는 기도가, ‘살던 디서 죽어지민 조키여(살던 데서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이다. 80세에 아버지를 미국 땅에 장례하고 나서 딸의 손을 부여잡고 한국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요양원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안고 오셨다. 볼티모어 다운타운에 있는 아파트에서 교포분들과 살면서 경험한 바는, ‘노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요양원으로 옮겼다 싶으면, 얼마 없어 장례식 부고장이 날아든다’라는 사실이다. 어머니에게 요양원은 죽음의 대기실로 인식되어 있다.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손가락을 마주 걸고 굳게 다짐한 바는, ‘요양원에는 절대로 보내지 않는다’라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도 ‘병원-요양원-장례식’의 공식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말았다. 때마침 직장을 은퇴할 즈음,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로부터 ‘요양원으로 가시는 게 좋겠다’라는 권고를 받았다. 98세가 되신 어머니는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진 데다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돌봄이 많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은퇴를 하자마자 주저 없이 어머니를 보살피기로 작정하였다. 서너 달을 넘기기가 어려워 보였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딸과 함께 보내는 집에서의 삶이 편안하셨을까? 어머니는 집안 내력에 없는 장수 노인이 되셨다. 형제들 대부분이 팔십 대에 세상을 떠난 데 반해 고향 마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래 사는 노인이 된 것이다. 입에 달고 하시는 바, “부택이 어멍은 백네 살꼬지 살암댄 호여라”는 말씀처럼, 내년이 되면 어머니도 104살이 되신다. 부디 그때까지 집에서 편안하게 거동하시다가 사나흘 누우신 후 천국으로 옮겨 가셨으면 좋겠다.

한편,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사단법인 제주장수복지연구원을 만들었다. 주요 사업이 ‘제주 지역 노인 행복도 조사’를 보고서로 만들어서 노인대학에 관련 내용을 보급하는 것이다. 1학기에 재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후 연구보고서를 만들고, 2학기에는 특강을 통해 그 결과를 공유한다. 올해는 제주도로부터 지방 보조 사업자로 선정되어 ‘노인 행복도 조사 및 관련 프로그램 개발·보급’ 과제를 받았다. 설문 중에서 ‘성공적인 노화’ 부문을 예로 들면, ‘1. 몸이 허락하는 한 활동을 계속한다, 2. 자식들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있다, 3.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4. 살기 좋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5. 나를 위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인다. 일과 자녀를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제주도 부모들의 삶이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다행히 2026년 3월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돌봄이 필요한 국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게 된다. 박은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제주지사장에 의하면, 제주도는 지자체 및 지역사회 기관 등과 협력해서 ’살던 곳에서 돌봄 받기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노인들이 익숙하게 정든 곳에서 가능한 한 돌봄을 누리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23년 노인실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7%가 ‘현재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응답하고 있다. 모쪼록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고도에서 지구상 유일한 해녀 직업으로 자식들을 먹여 살린 제주도 어머니들이,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제주도정이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 주기 바란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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