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나무와 어린이와 대통령

2025-05-08

나는 우리나라가 나무를 ‘제일로’ 사랑하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오래된 나무들은 더 오래 살도록 보호해 주고 어린 나무들은 나라의 곳곳에서 자기가 사는 땅을 기름지게 할지니, 잘 자라도록 돌보고, 길을 내거나 집을 지을 때, 나무 한 그루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오래 토론하고 그 나무를 보고 사는 사람들의 의견들을 모아 나무의 운명을 결정하면 좋겠다.

오래된 나무들이 공사판에서 함부로 뽑히고 찢기고 잘린 체 하얀 속살을 보이며 나자빠져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고 부아가 치밀 때가 많다.

내가 다니는 강변길에서 자란 기세가 좋거나 장래가 엿보이는 나무들을 나는 가꾼다. 칡넝쿨같이 강한 넝쿨들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걷어주고, 웃자란 가지들을 다듬어 준다.

인간에 대한 모독이 인간만을 상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얽힌 사연들을 함부로 내팽개치는 인간들의 무심하고 무지한 행위가 어떤 범죄 행위보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다. 이런저런 공사로 마을 강변에 오래 버티고 있던 나무와 바위들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나무도, 오래된 돌들도 호적을 만들면 어떨까. 마을의 나무나 강변의 큰 바위들을 관리하는 나라의 ‘관리 부서’가 있어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 때문에 하나의 커다란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그 나무를 돌아가고 멀리 구부러진 길을 갖고 있는 나라는 아름다움을 지키는 나라다. 길이 조금 구부러지고 공사에 돈이 조금 더 든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나무 한 그루 때문에 길이 구부러져 있는 것을 본 어떤 어린이가 “아빠, 저 나무 때문에 이 길을 이렇게 멀리 돌아가는 거야?”하고 물을 때 아빠는 무슨 말을 할까,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질문과 대답이 그려진다.

우리나라가 어린이들을 ‘제일’로 생각하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나는 어렸을 때 마을 어른들에게 네 가지 말을 들으며 살았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 사람이 되어야지’ 아이들이 싸우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냅둬라, 애들은 싸워야 큰다”. 싸우면서 아이들은 자잘못을 스스로 알고 뉘우치고 깨달아 자기를 고치고 바꾸어 마을 사람들과 생각을 맞추며 살아가도록 했다. ‘남의 일 같지 않다.’고 가르쳤다. 마을에서 일어나고 벌어지는 일들이 다 내 일 이었다.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마을에 한 아이가 태어나면 온 마을이 다 그 어린이의 선생이었다. 도둑질하면 안 되고, 거짓말하면 안 되고 막말하면 안 된다고 나는 마을에서 배웠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떻게 가꾸겠다는 말은 안 하고, 입을 열었다, 하면, 험한 막말로 남이나 헐뜯고, 초등학교 앞에서 엄청 난 숫자의 어른들이 모여 고함을 지르며 막말하며 다툰다. 어린이들이 듣고 보고 배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 다니고, 나라의 일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되면, ‘좋은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은 ‘나랏일’과 ‘나랏돈’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나무도 돌도 어린이도 힘이 없다. 어른들의 생각대로 배워 세상으로 나간다. 나무와 어린이들이 저 5월의 푸르른 산처럼 바람을 타고, 강물처럼 출렁이며 흐르도록 해야 한다. 연두색에서 초록의 건너가는 앞산에 꾀꼬리가 날아와 운다. 저 산 아래에서 우리 사람이 해야 할 말을, 할 짓을 생각해 보자. 멋진 어른은 없는가. 아름다운 말을 하는 어른들은 없는가. 대통령이 되면, 의원이 되면, 도지사 군수 시장이 되면 뭐 하나?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좋은 대통령, 좋은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 있는가.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곳(?)을 차지한 사람들의 파렴치함 이 나라의 기강과 인간의 근본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대통령은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나라의 선생님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은 다 대통령 탓이다. 저 산의 나무들과 저 하늘의 별들과 강가의 돌과 저 학교의 어린이들과 우리 국민에게 인간 교육을 담당할 ‘선생님’이 될 자신 없으면 지금 당장 그만두라.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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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어린이와 대통령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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