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참깨 증류주’ 만드는 온증류소 오규섭 대표 “비빔밥 참기름 싫은 사람 없더라” [이복진의 술래잡기]

2025-05-03

‘술’은 세대와 연령, 성별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왔다. 최근에는 ‘핫’한 걸 넘어 ‘힙’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특히 최근 변화하는 대중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술이 나오고 있다. [이 기자의 술래잡기]는 그러한 술에 대해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귀로 듣고 난 뒤 적는 일종의 체험기다. 특색있는 양조장이나 술, 그 술을 빚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전국에 있는 양조장과 그 주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참깨’는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식재료다. 고소한 향을 가진 참깨는 흔히 녹색 소주 병에 담겨 ‘참기름’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을 자주 봤다. 참깨 그대로 음식 위에 뿌려 시각적 완성도와 미각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흔한 참깨는 반면 양조 분야에서는 낯선 식재료다. 지방 함량이 50%를 차지할 정도로 기름지고 특유의 고소한 향이 술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을 깨부순 곳이 있다. 바로 ‘온 증류소’다.

경기 광주에 위치한 온 증류소는 이름 그대로 증류주, 즉 소주를 만드는 곳이다. 쌀을 발효시켜 증류한 프리미엄 소주 ‘형형 25’ ‘형형 40’ ‘형형 58’이 이곳의 주력 상품이다. 여기에 참깨를 침출시켜 만든 ‘연연 25’도 있다. 특히 ‘연연 25’는 국내 유일 참깨 증류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최근 온 증류소에서 만난 오규섭 대표는 “쌀 소주가 주류를 이룬 한국 증류식 소주 시장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며 “비빔밥에 참기름 몇 방울 넣었을 때의 그 고소함을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단 생각이 들어서, 제조한 증류식 소주에 참기름을 살짝 추가해 마셔봤더니 그 향이 매우 좋았다”고 ‘연연 25’이 개발 과정을 말해줬다.

오 대표는 “들깨도 해왔는데, 들깨는 참깨보다 열에 약하고 산패가 빠른 단점이 있었다”며 “참깨가 알코올 향과 더 울리는 고소함도 많았다”고 들깨가 아닌 참깨로 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국내 여성 방송인 최초로 전통주소믈리에 자격증을 소지한 김민아도 참깨를 활용한 증류식 소주라는 점에서 ‘연연 25’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민아는 “직접 마셔본 연연 25의 원주(증류기에서 바로 나온 90도 이상의 술)는 참기름 가득한 비빔밥이 생각날 정도로 은은한 향과 맛이 매력적이었다”며 “단순히 지역 농산물로 전통주를 만든다는 개념을 넘어 한국인의 식문화 속 깊이 뿌리내린 참깨를 활용했다는 것은 온 증류소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개발에 임했는지를 알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진(Gin)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연연 25처럼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인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는 좋은 증류식 소주가 지속적으로 나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오 대표는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전공하고, 일본 오사카대 발효공학과에서 인공지능(AI)를 활용한 발효 공정 제어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IT 회사를 설립해 발효 공정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던 그가 3년 전 갑자기 증류소를 세웠다.

“내 원래 꿈인 술을 만들기 위해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정규 과정과 최고 지도자 과정을 이수했어요. 그리고 증류소를 세웠죠. 여러 가지 술을 마셔봤고 직접 만들기도 했는데, 증류주가 가장 끌렸어요. 종합 분식집보다 한 분야에 깊게 파고 드는 김치찌개 맛집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내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를 쓰고, 최선의 증류기를 사용해 가장 좋은 증류주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오 대표는 “증류주만 하겠다는 다짐이 회사 이름인 ‘온 증류소’에 담겨 있다”며 “증류소에서 탁주나 청주를 내면 다른 술도가에게 미안하다”고 증류주만 고집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현재 온 증류소는 2종류의 술을 내놓고 있다. ‘연연’과 ‘형형’이다. 도수는 최대 58도까지 있다.

“연연과 형형 모두 무농약 친환경 쌀이 주원료입니다. 직접 제조한 수제 입국의 사용 비율을 높여 복합적인 향이 살아 있는 원주를 빚고, 최신식 독일제 증류기로 내려서 원주의 향과 맛을 극대화하려 노력하죠. 포장재에도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의 품격을 맞는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병과 마개에도 품질에 주안점을 두고, 현재 우리가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했죠.”

온 증류소가 일명 ‘주당’이라고 불리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린 데에는 참깨 소주인 점도 있지만, 높은 도수(58도) 소주를 내리는 곳이란 점도 있다. 도수는 높지만 알코올 특유의 거부감이 적었으며, 맛과 향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고도수의 증류식 소주를 내놓게 된 이유에 대해 오 대표는 “한국의 중국음식점에서 가격 싸서 마시는 희석식 소주 말고 고가의 중국술과 겨룰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었다”며 “형형 58은 전통주에서 고가이지만 중국음식점에 팔리는 유명 백주보다는 훨씬 착한 가격이다. 마호타이나 오량액 같은 중국의 유명 술 보다 좋다는 평가받을 때 가장 힘이 난다”고 말했다.

온 증류소는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가을에 오크통 숙성 소주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번 가을에 프랑스 오크통에 숙성해 세 번의 여름을 거친 오크통 숙성 소주를 출시합니다. 증류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형 증류주를 계속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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