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찰스 랭글 전 의원, 美현충일에 별세…"국가적 손실"

2025-05-27

6·25 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미국 의정 활동 내내 한반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 입장을 적극 대변했던 미 정치권의 거목 찰스 랭글 전 하원의원이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4세.

고인이 ‘명예 정치인’으로 재직했던 뉴욕시립대 시티칼리지는 랭글 전 의원이 이날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밝혔다. 이날은 미국의 현충일(메모리얼 데이)이다. 전쟁에서 숨진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날이 고인에게도 생의 마지막 날이 됐다.

1930년 뉴욕 맨해튼의 흑인 밀집 지역인 할렘에서 태어난 랭글 전 의원은 20세였던 50년 자원입대했다. 6·25 개전 초기 미 육군 2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낙동강 방어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전했다. 50년 11월 하순 평안북도 군우리에서 벌어진 유엔군과 중공군 간 대규모 교전(군우리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40여 명의 병사와 함께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고인은 이 공훈으로 퍼플하트(전사자나 상이군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와 동성무공훈장을 받았고, 2007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고인은 회고록 『그 이후로 단 하루도 나쁜 날이 없었다(And I Haven’t Had a Bad Day Since)』에서 “1950년 11월 30일 중공군의 기습으로 내 동료들이 쓰러졌지만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내게는 단 하루도 나쁜 날이 없었다”고 전쟁에서 겪은 경험과 이로 인해 달라진 인생관을 풀어내기도 했다.

46년간 의정활동…한국 입장 적극 대변

1971년 하원의원(뉴욕주)이 된 뒤로는 2017년까지 무려 46년간(23선) 하원에 있으며 미 정치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이 기간 미 의회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결의안’(2014년), ‘6·25 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을 발의하는 등 한·미 동맹 발전과 한반도 평화, 참전용사 권익 증진을 위한 입법을 적극 추진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강하게 반대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지지하는 등 양국 관계 발전에도 힘썼다.

미 의회 내 지한파 의원들의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 창설을 주도해 초대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코리아 코커스는 한·미 교류 강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친목·연구 단체로 양국 동맹의 가치를 증진하는 대표적인 의원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

2017년 정계에서 은퇴한 고인은 2021년 정치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수상했다. 국방부가 주관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이 상은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은 2013년 동맹의 의미와 중요성을 조명하고 미래 양국 동맹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졌다.

랭글 전 의원은 당시 수상 소감으로 “(6·25 때) 부상을 당하고 한반도를 떠났을 때는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일곱 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며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두 나라가 더 가까워지고,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고인은 결국 염원했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랭글 전 의원은 미국에서 흑인 정치의 지평을 넓힌 대표적인 정치인으로도 꼽힌다. 의회 내 흑인 의원 모임 ‘블랙 코커스’의 창립 회원이며, 하원 세입위원회 최초의 흑인 위원이자 위원장을 지냈다.

미 각계 추모…“억압받는 이들의 챔피언”

그런 고인의 별세에 미 정치권 등 각계각층의 추모가 이어졌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거의 반세기 동안 의회에서 봉사한 랭글 전 의원은 영향력 있는 입법가이자 소외된 이들을 위한 평생의 목소리였으며 억압받는 이들의 챔피언이었다”고 애도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인을 “위대한 친구이자 위대한 인물,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지역과 미국의 이상을 위해 싸운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흑인 민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그를 “정치적 거인”이라 부르며 “그의 타계는 국가적 손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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