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영지식증명 기반 블록체인 투표의 첫 실증 사례가 나왔다. 대규모 온라인 선거에 실제 적용된 만큼, 이번 성과를 계기로 주주총회와 재건축 조합 의결, 정당 경선 등 사회적 의사결정 전반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약 150만명이 참여한 온라인 선거에 지크립토가 개발한 블록체인 기반 투표시스템이 적용됐다. 영지식증명 기술이 투표시스템과 접목된 첫 사례다.
영지식증명은 데이터를 직접 공개하지 않고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암호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내역을 노드에 기록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개인정보와 거래 정보가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영지식증명은 이 같은 모순을 해소해 투명성과 프라이버시를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영지식증명 기술은 새로운 디지털자산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금융 영역과의 접목 가능성도 크다. 최근 금융당국이 토큰증권발행(STO) 지침을 내놓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논의하면서, 거래 정합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적 수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크립토 관계자는 “이번 온라인 선거에서 영지식증명 기술을 적용해 단시간에 몰린 수십억 건 연산을 지연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면서 “스테이블코인과 STO 발행·관리, 준비금 검증, 유통 거래까지 지원하는 금융 플랫폼 '파인애플' 출시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크립토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아 해당 기술을 고도화해왔다. 최근 도시정비법 및 상법 개정과 맞물려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된 전자투표의 활용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투표 과정에 적용할 경우 유권자의 선택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집계 결과의 무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 영역에 활용되면 원장을 노출하지 않고도 거래 기록이 올바른지 검증할 수 있어, 데이터 노출 없이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다.
지난 6월 개정된 도시정비법 시행으로 전자투표가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블록체인 기술의 적용 범위가 본격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조합원은 더 이상 현장을 직접 찾지 않아도 의결에 참여할 수 있다. 투표 결과는 시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서버에 영구적으로 기록된다. 사업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자가 많은 도시정비사업의 특성상, 무결성 확보·위·변조 방지·비밀투표 보장이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의 효과가 크다.
활용 가능성은 주주총회로도 이어진다. 상법 개정에 따라 2027년 1월부터 시가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는 전자주주총회 개최가 의무화된다.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대기업 주총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높은 투명성 요구가 동시에 작동하는 대표적 사례다. 블록체인 전자투표를 접목할 경우 사회적 의사결정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