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으로부터2’ 여정단은 오늘도 도시를 걷고, 그 길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시민들의 참여로 작업을 확장해 나간다. 리가에서는 역사적 기념비 앞에서 평화를 기원했고, 탈린에서는 교차로 한가운데서 시민들과 호흡했으며, 헬싱키에서는 장소를 읽으며 다가올 무대를 준비했다. 작은 메아리처럼 시작된 이 과정은 결국 세계로 번져가는 평화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편집자주>
9월 4일 리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시의 상징적 풍경이었다. 숙소 근처 화약탑 광장에는 밤늦도록 인파가 몰려들었고, 자유기념비 광장은 첫 퍼포먼스 장소로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결국 우리는 다음 날 아침 화약탑 앞에서 ‘허공에 Peace 쓰기’를 시도하며 여정을 열었다. 흰 옷을 입은 동료가 평화 심볼을 들고 스틸컷을 남기는 동안 퍼포먼스는 도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어 자유기념비 광장에서는 군 열병식이 한창이었는데, 그 장면은 우리가 구상하는 작업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며 공간의 긴장감을 더욱 또렷하게 느끼게 했다. 오후가 되어 본격적인 퍼포먼스를 준비하며 현수막을 펼치자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고, 흔쾌히 자신들의 평화 메시지를 적어 넣었다. 많은 글귀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순간, 우리가 이곳에서 하는 작은 행위가 단순한 작업을 넘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가 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곧 경찰이 다가와 이곳은 허용되지 않는 장소라며 제지했다. 그들의 태도는 친절했지만, 우리는 대포가 놓여 있는 화약탑 옆 전쟁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장소가 바뀌자 퍼포먼스는 새로운 상징성을 띠었다. “Peace Over War”라 쓰인 외투를 입고 대포 옆에 선 작가가 퇴장한 뒤, 꽃다발이 12지점에 놓였고, 정주소리가 울리는 원 안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이어졌다.

나는 꽃으로 ‘허공에 Peace 쓰기’를 하며 대포의 포구에 꽃을 꽂아 넣었다. 대포가 겨눈 방향으로 나란히 서서 평화를 기원하던 순간, 종소리와 정주소리가 함께 울리며 퍼포먼스는 마무리되었다. 현장에서 시민들이 남긴 평화의 글귀는 작업의 일부로 남아, 우리의 여정이 곧 확장된 퍼포먼스임을 증명했다.
9월 6일 탈린으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버스를 놓치고 지연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시간의 공백을 경험했으나, 그것 또한 여정의 일부였다. 올드타운에 도착한 뒤 우리는 도시를 걸으며 곳곳에서 작업을 기록했고, ‘허공에 Peace 쓰기’는 영상으로 남아 또 다른 층위를 만들었다. 도시의 고풍스러운 공간들은 스스로 무대가 되었고, 준비와 토론이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퍼포먼스의 일부로 느껴졌다.
9월 8일 헬싱키에 도착한 아침, 항구에는 안개가 가득했고 성당 언덕에 오르는 길에서 조금씩 시야가 트였다. 그날은 주로 도시를 읽고 향후 작업을 구상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퍼포먼스보다는 여정을 이어갈 발판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다시 탈린으로 돌아와서는 곧 다가올 노르웨이 일정을 대비해 아티스트 토크의 방향을 협의했다.

마지막으로 탈린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는 도시 한 교차로의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흰 외투와 현수막이 바닥에 놓였고, 작은 종소리가 울리며 공간을 순환하는 행위가 이어졌다. 나는 현수막 위에서 ‘허공에 Peace 쓰기’를 이어갔고, 퍼포먼스의 끝은 시민들의 참여로 완성되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한 글자씩 평화의 염원을 적어 넣으면서 현장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함께 만드는 무대로 변했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약간 늦은 저녁식사 후 각자 짐을 꾸린다. 내일은 이번 여정의 중간 기착지이자 행사 중간결과보고와 같은 일정들로 가득찬 노르웨이로 간다.
글·사진 = 심홍재 한국행위예술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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