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중 하나는 1억 이상 피해…93%가 한 푼도 못 돌려받아[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2025-05-21

사기 범죄가 갈수록 조직화되면서 피해 규모도 더욱 커지는 가운데 피해자 셋 중 하나는 1억 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절반가량은 배우자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돼 이혼·별거·파혼을 했거나 앞둔 것으로 나타났다. 소중한 자산을 날린 데 이어 주변인들과의 관계까지 붕괴되면서 열 중에 아홉은 우울증, 수면 장애 등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진행한 사기 피해자 심층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금액이 ‘1억 원 이상~5억 원 이하’라고 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 111명 중 32%로 가장 높았다. ‘5억 원 이상’이라고 답한 피해자도 2명(2%)으로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억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5000만 원 이상~1억 원 미만’ ‘1000만 원 이상~5000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자 비율도 각각 20%, 14%에 달했다.

‘억 소리’ 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사기범죄 특성상 범인이 검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 응답자의 89%는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기 피해를 당한 지 6개월이 넘은 응답자가 전체의 59%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검거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 스캠으로 1억 2000만 원을 날린 한 피해자는 “경찰에 1년 전에 신고했지만 미제 사건으로 수사 중지된 상태”라며 “자금책들이 외국에 있어서 못 잡는다고 하더라”고 한탄했다.

피의자 검거가 되지 않고 있는 만큼 피해액을 돌려받은 경우도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설문 응답자의 93%는 피해액을 단 한 푼도 못 돌려받았다고 답변했고 ‘일부 환수’와 ‘전액 환수’는 각각 3.5%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응답자의 70% 이상이 당한 신종 사기(투자 사기, 로맨스 스캠, 리뷰·부업 사기)의 경우 보이스피싱과 달리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계좌 정지, 피해자 보상 등이 일절 불가능하다. 코인 사기로 7400만 원을 날린 한 주부는 “변호사 상담을 받아보니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거짓말해서 범행에 쓰인 대포 통장을 지급 정지하라고 하더라. 양심에 찔려 차마 그렇게는 못했다”고 토로했다.

비극은 단순히 돈을 날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응답자의 40%가량은 이혼·별거 등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단절 및 악화를 겪고 있었다. 갈등이 심각한 이유는 피해 자금 출처에서 드러났다. 개인 자산만 쓴 경우가 49%로 가장 많았지만 가족·지인 돈까지 빌린 경우도 12%, 대출 혹은 사채를 끌어다 쓴 경우도 29%에 달했다. 비상장주식 사기로 8500만 원을 날린 40대 여성 피해자는 “아들 전역 후 자취방 전세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대출까지 3500만 원가량 껴서 투자했다가 사기당했다”며 “남편과 사이가 너무 안 좋아져서 현재 이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가 붕괴되면서 내면도 무너졌다. 사기 피해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묻자 응답자의 35%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수면 장애(26%)’ ‘대인 기피증(17%)’ ‘공황 장애(11%)’ 등까지 합하면 전체의 90%가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리딩방 사기로 전 재산 1억 5000만 원을 날린 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50대 피해자는 “즐기지 않던 술만 늘었다”며 “지옥은 사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현실에 공존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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