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메이저리그 - PGA 투어를 가다

“우승 전보다 술을 좀 더 마신다. 내 인생 최대 변화는 알코올 중독으로 기운 거다. 그거 끝내준다.”
남자 골프 세계 3위 잰더 쇼플리(32)가 9일(한국시간) 영국 에든버러 인근 르네상스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디 오픈 우승한 후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나. 압박감이 더 커졌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기자들은 그가 클라릿 저그(디 오픈 우승컵)에 와인과 테킬라를 부어 마신 걸 기억한다. 회견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기자 한 명은 “기사 제목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쇼플리는 원래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었는데, 지난해 우승 후 숨겨놨던 개그 본능을 발휘하고 있다. 무표정한 채로 유머러스한 멘트를 쏟아낸다. 자학 유머의 대가다. 창피한 과거도 남 얘기하듯 태연히 말한다. 농담처럼 얘기하면서도 팩트에 충실하다. 한참 진지하게 얘기하던 쇼플리가 또 한 번 기자들을 웃겼다.

(기자) “지난해엔 빅3 중 한 명이었는데 올해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다. 로리 매킬로이와 스코티 셰플러의 최고 선수 경쟁 화두에 다시 들어가고 싶나.”
(쇼플리)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 기사를 써줘’라고 말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 오늘은 화장실 앞에 내 사진이 걸린 걸 봐서 좋았다. 가슴이 훈훈했다. 지금 내가 겪는 상황(부진)에 대한 내 생각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미디어센터에는 지난해 로버트 매킨타이어와 2023년 매킬로이 등 역대 우승자 사진이 걸려 있다. 얄궂게도 화장실 입구에 2022년 우승자 쇼플리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담당자가 난처할 만하다.
(쇼플리) “농담이다. 앞으로 10년간 저 자리에 그대로 둬도 된다.”
(기자) “알코올 중독과 화장실 중 어떤 (기사) 제목이 더 나을 것 같나.”
(쇼플리) “기자들은 참 창의적이다. 기사가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자.”
(사회자) “칭찬해 준 건 고맙다.”
(쇼플리) “(기사가 나올) 오늘 밤이 기대된다.”
쇼플리는 메이저 2승 등 PGA 투어에서 9승을 거뒀다.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올해는 갈비뼈 부상으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톱10도 지난해 16번이었는데, 올해는 한 번(공동 8위)이다. 지난해 워낙 잘해 세계 랭킹은 유지하지만, 페덱스컵 랭킹은 57위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디 오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부진 속에서도 쇼플리는 67경기 연속으로 컷을 통과했다. 부상 후유증 속에서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힘든 기록이다. 그의 아버지 슈테판 쇼플리는 육상 10종 경기 독일 국가대표였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다친 후 미국에 건너가 골프 프로가 됐고, 아들을 PGA 투어 선수로 키워냈다. 아들에게 독일인 특유의 근면성과 절제력을 가르쳤다.
쇼플리는 “내 사진을 화장실에서 옮길 수만 있다면 정말 멋질 것”이라고 말했다. 농담이라고 했지만, 그는 진담을 농담처럼 한다. 기자들 모두 성실하고 진솔하며 재미있는 그를 응원하는 듯했다.